류가헌이 사진위주 갤러리로 제법 이른 자리매김을 하게 된 데는 한옥이라는 집의 역할이 컸다. 한옥 두 채가 ㄷ자형 그러니까, 앞으로 나란히 형상으로 맞붙어있는 류가헌의 큰 한옥은 전시장과 사진책을 보며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북카페로, 작은 한옥은 사무공간으로 쓰인다. 처음 이사를 들어올 때에는 한옥보존지구여서 지원금을 받아 새로 짓는 방법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시간의 켜가 쌓인 모습이 친숙하고 어여뻤다. 1970년대 만들어진 미닫이문과 80년대 간유리, 90년대 덧대어진 대들보, 폴딩도어라 부르는 접이식 유리문은 갤러리를 시작하면서 2000년대에 놓은 것이다. 수십 년간 깃들어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한 집. 그 모양이 '다큐멘터리 사진'을 보는 것처럼 감동이 있었다. 저렇게 손에 견 질감을, 세월에 순응한 색감을 어디에서 무슨 값으로 얻을 것인가. 방문객들에게도 이런 집이 유년시절의 정서와 잇닿아 다른 전시 공간에 들어설 때보다 친밀감을 주는 듯했다.
이렇다보니, 전시 관람을 온 이들 중에는 집 구경도 더불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감탄 끝에 불편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꼭 뒤따른다. 부지런해야 하는 것도 불편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면, 그렇다 한옥은 불편하다. 집에 흙과 나무 돌 등 자연요소가 많으니, 자연의 것들이 자연스레 깃든다. 기와지붕에는 해마다 쑥부쟁이가 꽃밭을 이룬다. 뿐이랴, 가중나무와 뽕나무도 물색없이 키를 돋운다. 관람객들은 예쁘다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들이 감탄할 때, 사는 이는 애가 탄다. 어서 뽑아야 할 텐데, 하고.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결국 기와지붕 흙의 성정을 흩뜨려 비가 새는 원인이 된다.
또 봄이면 툇마루엔 송홧가루가 뽀얗게 내려앉는다. 수시로 닦아주고 윤을 내주어야 한다. 마당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벚꽃 잎과 저 건너편 집의 미선나무 작은 꽃송이가, 가을에는 방석만한 버즘나무 잎이 날아든다. 장마 전에 홈통에 막힘은 없는지 살펴줘야 처마 밑을 지나다 물벼락 맞는 일이 없고, 겨울에는 문 틈새마다 문풍지를 덧대서 난방효율을 높여야 한다. 마당과 골목에 눈 치우는 일도 일은 일이다.
그런 '불편'을 빼고 나면, 종아리 같은 서까래가 내려다보는 천정의 어여쁨은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고, 미닫이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한 통속인 구조도 시원스럽다. 순후한 창호문은 닫아도 무뚝뚝하지 않다. 툇마루와 마당의 역할은 또 어떤가. 마당은 비어서 쓰임이 있는 공간이다. 빈 마당에 새 그림자가 무늬를 그리며 지나갈 때, 기왓골 따라 낙숫물 빗줄기들이 주렴처럼 드리워질 때, 눈송이 소북소북 쌓일 때, 마당은 비어있기에 더 아름답다. 보자기처럼 펼쳐진 마당은 무엇이든 담는다. 연이은 전시 오프닝 행사와 작가와의 만남, 후배 사진가들이 열어 준 한 원로사진가의 칠순기념 사진전, 사진가 부부의 전시를 겸한 간소한 결혼식 등 즐거운 숱한 기억들이 마당이 있어 가능했다. 툇마루는 하루 종일 햇살과 사람이 번갈아 가며 앉는다. 전시를 보고 난 관람객들이 앉아 쉬어가기도 하고,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 대문을 열기 전, 류가헌 식구들이 빨랫줄에 앉은 제비 가족처럼 조르라니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곳도 툇마루다. 그 아침의 고요가 없다면, 하루는 얼마만한 수런스러움이랴.
얼마 전 일본에 새로 열린 큐슈올레 길을 걸은 적이 있다. 오지의 산촌마을도 지났는데, 인상적이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농가들의 깔끔함이었다. 담장 옆에는 내남없이 동백이며 천리향 같은 꽃나무들이 무리를 이루며 서있고, 깨끗이 빈 마당 한켠에 농기구들이 가지런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기는 우리네 농촌과 다를 바 없을 텐데도 그랬다. 삶의 존엄은 저리 작은 데서 빛이 나는구나, 생각했다. 분명 오래된 집인데 낡은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잘 늙은 집처럼 보였다. 그 집에 사는 이도 꼭 그럴 것 같았다.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집. 류가헌 한옥도 그리 늙어 가면 좋겠다. '함께 흐르면서 노래하자'는 이름 뜻 따라.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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