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노장은 하얀 수염으로 희미한 미소마저 감췄다. 수상 소감도 그리 길지 않았다. 불과 3년 만에 다시 세계 영화계 최고의 영예를 안게 된 이답지 않은 진중한 모습이었다. 냉기 어린 연출로 영화팬들을 사로잡은 그의 풍모는 떠들썩한 시상식에서도 변함 없었다.
칸국제영화제가 27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70세 대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에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65번째 막을 내렸다. 경쟁부문에 나란히 진출한 한국영화 '다른 나라에서'(감독 홍상수)와 '돈의 맛'(감독 임상수)은 상을 받지 못했다.
'아무르'는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사랑의 시험대에 서게 된 80대 노부부의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의 명배우 장 루이 트랑티냥과 엠마누엘 리바가 주연을 맡았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차가운 화법으로 묘파한 하네케의 전작들과 달리 따스한 감성을 전한다.
이변은 없었다. '아무르'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영화제 초반부터 점쳐졌다. 20일 첫 상영 뒤 언론과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치즘의 태동을 살핀 '하얀 리본'으로 2009년 황금종려상을 첫 수상한 하네케의 화려한 이력이 걸림돌로 여겨졌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 얼마 안된 노장에게 다시 큰 상을 주겠느냐는 소수의 예측은 결국 빗나갔다.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빌리 오거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장 피에르 다르덴ㆍ뤽 다르덴 형제에 이어 하네케가 6번째다. 하네케는 최단기간(3년) 2회 수상의 기록도 세웠다. 하네케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견뎌준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TV 리얼리티쇼의 스타가 되는 마피아 조직원의 이야기를 그린 이탈리아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리얼리티'에 돌아갔다.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비욘드 더 힐스'는 최우수각본상과 최우수여자배우상(코스미나 스트라탄ㆍ크리스티나 플루투 공동 수상)을 차지했다. 최우수남자배우상은 덴마크영화 '더 헌트'(감독 토마스 빈테르베르크)의 매즈 미켈센이 안았다.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어둠 뒤, 빛'으로 감독상을, 11번째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국의 켄 로치는 '엔젤스 쉐어'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리얼리티'의 심사위원대상과 레이가다스의 감독상 수상에 대해선 의외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올해 칸영화제는 노장들의 잔치였다. 90세의 알랭 레네를 비롯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로치 등 일흔을 넘긴 노장 5명이 황금종려상에 도전했다. 비경쟁부문에서도 이탈리아의 전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다리오 아르젠토 등이 포진했다.
하지만 수상 결과는 신진과 노장의 적절한 배합이었다. 노장을 예우하고 신진을 발굴하며 세계 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칸의 전통은 변함없었다. 심사위원대상의 가로네와 두 개 부문을 수상한 문주, '더 헌트'의 빈테르베르크는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40대로 꼽힌다.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애프터 루시아'의 멕시코 감독 미켈 프랑코는 33세다.
'이상 악천후가 영화제를 강타하다'는 제목의 기사(미국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에서 보듯 올해 칸영화제는 행사기간 12일 중 사흘 정도만 비가 오지 않은 우중 영화제였다. 폐막식이 열린 27일에도 비가 내렸다. 영화제는 비에 젖었으나 어느 해보다 많은 수작들이 알차고 뜨거운 경쟁을 펼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대의 고민과 갈등을 품은 출품작들은 대체로 따스하거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의 속성을 비판한 '코스모폴리스'나 종교에 짓눌린 루마니아 사회의 풍경을 묘사한 '비욘드 더 힐스' 등 사회성 강한 영화들도 적지 않았다.
한편 한국영화로는 신수원 감독의 '서클라인'이 칸영화제 본부문과 별도로 개최되는 비평가주간 중단편 부문에서 카날플러스상을 수상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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