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참 재미있었겠다. 못 가봐서 아쉽네.
지난 주말 강원 평창의 산골마을 폐교에서 열린 동네 잔치 이야기다. 평창 읍내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이곡리, 주민이 80명쯤 되는 이 작은 마을에 감자꽃 스튜디오가 있다. 폐교를 개조해 문화예술 교육 센터로 쓰는 곳인데, 여기서 26~28일 ‘감자꽃 스튜디오 봄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운 판이 벌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이 행사는 감자꽃 스튜디오가 주관하고 이곡리를 포함한 인근 5개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치르는 마을축제다. 주민들이 공연도 하고 특산물과 음식도 팔고 찾아온 손님들은 주변 산의 임도 트레킹도 하면서 즐기는 자리다. 멀리서 서울에서도 오고 읍내와 도내 다른 지역에서도 구경하러 온 사람이 600명쯤, 5개 마을 주민을 다 합친 숫자보다 훨씬 많아서 조용하던 마을이 북적북적, 숙소가 동이 났다고 한다.
감자꽃 스튜디오 봄소풍은 외부 지원이나 협찬이 전혀 없이 주민들과 예술가들, 지역 단체와 자원 봉사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치르는 행사다. 지자체마다 이런저런 축제가 수두룩하지만 겉보기만 요란하지 실속은 없는 게 태반인 데 비해 소박하지만 알찬 마을 축제다.
이번 봄소풍의 하이라이트는 일요일인 26일 오후 폐교 운동장에서 열린 ‘우르르 음악여행.’평창중 스톤파크, 평창고 대일밴드 등 중고생 밴드부터 읍내 주민들의 두리밴드, 평창 둔전평농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마을 부녀회 댄스팀까지 죄다 출연했다. 마침 CJ문화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참가한 젊은 음악가들 7개 팀과 산울림의 김창완밴드까지 합세해 4시간 동안 신나게 공연을 펼쳤다.
그중 헤비메탈 밴드 공연을 보던 동네 할아버지가 흥에 겨워 맥줏잔을 들고 무대 앞으로 나와서는 한 말씀 하셨단다. “내가 젊으면 저보다 훨씬 잘 할 텐데.”부녀회는 마을 보건소장님에게 건강체조로 배운 춤을 선보였다. 흥겨운 리듬과 단순한 동작에 구경꾼들도 신이 나서 모두 일어나 한바탕 몸을 흔들었단다. 운동장 한편에서는 솥단지 걸어 밥 하고 전 부치고 막걸리며 특산물도 팔면서 시끌벅적 즐겼다니 이런 것이 진짜 축제이구나 싶다.
지난해에 한 번 해보니 재미도 있고 자신감도 붙어서 올해는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을마다 무엇을 준비하고 주차 관리는 누가 하고 특산물은 어느 집에서 갖고 나올지 의논해서 일을 나눴다. 덕분에 지난해보다 더 짜임새 있게 치렀고 준비한 특산물도 거의 남김 없이 팔렸다니 주민들 살림에도 보탬이 됐을 것이다.
감자꽃 스튜디오는 예술경영 전문가로 유명한 이선철씨가 10년 전 건강을 크게 상해 몸을 돌볼 겸 이곳으로 들어왔다가 2004년 열었다. 그동안 꾸준히 문화예술 교육과 체험 활동을 한 덕분에 주민들이 마을축제의 가치나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많이 이해하고 적극 참여하는 단계까지 왔다. 특히 평창고의 대일밴드는 사고뭉치 아이들의 모임쯤으로 통했는데,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전문가들 지도를 받으면서 더 이상 말썽도 안 부리고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지역 명물이 됐다. 평창중 스톤파크와 평창고 대일밴드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여기에 와서 연습을 한다.
감자꽃 스튜디오는 연중 쉼 없이 돌아간다. 평소 문화예술 교육과 워크숍 외에 봄이면 봄소풍, 여름엔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캠프, 가을의 마을 운동회,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는 성탄극장까지. 특히 성탄극장은 100% 주민들이 진행한다. 가족밴드에 교회 목사님의 막춤, 간단한 단막극에 80~90대 할머니들의 부채춤까지 다들 열심히 연습해서 나온다.
이선철 대표는 “문화가 지역공동체를 살린다”고 강조한다. 지역 축제를 특산물 판매 나 관광 홍보쯤으로 치러선 제대로 굴러갈 수 없고, 지역의 문화자원과 특성을 살리고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진짜 축제다워진다고 말한다. 이번 행사가 좋은 본보기다. 규모가 작으면 어떤가. 이런 마을축제가 동네마다 있으면 참 좋겠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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