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법률소비자연맹이 4,000여명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8명(78.51%) 가량이 '정치인이 가장 부패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반부패정책학회 연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9명(87.5%)이 '대한민국 사회는 썩었다'고 응답했고, 이 중 가장 부패한 직업으로 정치인을 지목했다. 국제사회 역시 '한국의 부패근절은 정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렇게 된 이유로 역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두환정권과 노태우정권 때 천문학적인 비자금조성 비리를 비롯 김영삼정권의 한보부정대출사건, 김대중정권의 '진승현 게이트'와 '최규선 게이트', 노무현정권의 '박연차 게이트'로 온나라가 시끄럽더니, 요즘에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 비리 의혹으로 정권 레임덕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 임기 말마다 터진 권력층비리는 정치불신 가중과 더불어 대외신인도를 크게 훼손해 왔다.
19세기 영국 사학자 로드 액턴은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이 명언은 청렴사회를 갈망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48년 제헌 이래 한국의 헌정사는 절대권력을 용인했다. 그런 과정에서 필연적인 절대부패를 양산했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개헌을 성사시킨 87년 이후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자부심과 국제사회의 긍정평가에도 불구하고 부패의 구렁에 빠져 있다.
한국청렴도(CPI·부패인식지수)는 43위로, 20 여 년간 답보 상태다. 점수면에서도 10점 만점 중 중간정도인 5점대를 기록, '부패' 중턱을 넘어 '청렴'들판으로 넘어가는 '깔딱고개'에 멈춰 할딱이고 있다. 우리나라 청렴도를 경제, 문화, 체육, IT(정보기술) 부문처럼 세계선도 대열로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대권에 도전하는 한 후보는 대통령친인척비리수사처를 두겠다고 일찌감치선언한 상태다. 또 19대국회에 진출한 정치신인들도 여당과 야당을 불문하고 이구동성으로 권력층 비리 척결을 공약 우선순위에 넣어 당선됐다. 수십년간 역대정권 '레임덕 권력비리'가 터질 때마다 '공수처(공직비리수사처)'를 설치하라고 주장한 주체도 시민단체들이었으니 어떤 명칭이든 간에 권력비리 척결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공감대는 충분하다.
역사만큼이나 뿌리깊은 중국의 부패를 홍콩에서 몰아낸 염정공서(ICAC)는 너무나 유명하다. 또 검찰과 경찰을 산하에 보조기구로 둔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도 염정공서 못지 않은 막강한 부패방지기구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 1, 2위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에서도 180여개 국가 중 5위권 내에 랭크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권력비리 근절을 위해 청렴강국 건설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초강력수사 독립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영국의 명재상 글래드 스톤 경이 한 말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는 경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김덕만 정치학박사 ·국민권익위원회 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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