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의 5주기를 맞아 산문집 <빌뱅이 언덕> (창비 발행)이 출간됐다. 안동 빌배산 빌뱅이 언덕은 권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곳. 고인은 1983년 여름 <몽실언니> 계약금으로 이곳에 오두막집을 지어 2007년 작고할 때까지 머물렀다. 몽실언니> 빌뱅이>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 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 질 녘이면 더욱 좋아라'(시 '빌뱅이 언덕' 전문)
신간은 43편의 산문을 엮고 부록에 '빌뱅이 언덕'을 비롯한 시 7편, 동화 1편을 실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과 출판사에서 새로 찾아낸 것들이다. 창비 백승윤 편집자는 "수록작품의 절반 이상이 작은 잡지에 발표했지만 단행본으로 엮이지 않아 일반독자는 물론 학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글들로 발굴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쓴 1부에서는 일본에서 동화책과 예수를 만나게 된 사연, 책으로 위로 받은 한국전쟁 시절을 회상한다. 절망적인 가난과 참담한 전쟁의 와중에 접한 그림책과 동화책은 소년 권정생을 아름답고 슬픈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산문 '나의 동화 이야기'에서 작가는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며 자신의 동화가 어른들에게 읽히는 까닭이 '한국인이면 누구나 체험한 고난을 주제로 썼기 때문'일거라고 추측한다.
2,3부는 1970~2000년대 한국사회를 성찰한 글들을 엮었다. 평생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며 신앙에 바탕을 둔 작품을 썼던 작가는 '김 목사님께' '다시 김 목사님께1' '다시 김 목사님께2'로 이어지는 글에서 80년대 정치, 사회상과 한국 교회의 부패를 규탄한다. '언제부터 한국 교회가 이토록 허세를 부리며 사치와 낭비로 타락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교회는 정치와는 떨어져 순수한 도덕적 수양만으로 높은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어쩌면 그렇게 정치와 결탁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기만하는 것입니까?'(다시 김 목사님께 2)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발문에서 '권정생 선생의 동화는 이제 국민문학의 반열에 올라 있다 (…) 그의 글이 책상 앞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병든 몸으로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생활의 있는 그대로의 반영이라는 점이야말로 그가 동시대인들로부터 받는 존경의 원천이다'고 평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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