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만 유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도 유행을 탄다. 학교 폭력은 도돌이표처럼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언론의 주목을 끄는 인기 아이템이다. 이 닳고 닳은 유행에 정부는 공권력 투입이라는 편리한 칼을 또다시 빼들었다. 처벌 위주의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학교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해 사실을 숨기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인식의 개선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일보 5월 17일자 기사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신고된 학교 폭력 건수는 총 280건이었지만 올해는 1월부터 4월까지의 신고 건수만 해도 7,718건에 이른다. 더욱이 학생 본인이 신고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학교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학교 폭력 신고 건수가 늘었다는 수치를 인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교 폭력 신고 건수가 27배 늘어났다는 말은 학교 폭력이 27배 늘어났다는 말과 전혀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고건수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예 신고 자체를 받지 않는 것인데 이를 학교폭력의 근본적 대책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학생이 제시한 학교 폭력의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기로 하자. 학생은 세 가지 원인을 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원인은 짚어내기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정서적 단절과 독선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이것이 핵가족화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대가족에서 자라는 청소년은 조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학교 폭력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거라면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학생이 제시하고 있는 나머지 두 가지 원인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각종 영상물의 폐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에 폭력이나 일탈이 등장하는 것을 두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보다는 인권의 문제'라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이 서로 대립하는 가치도 아니고, 폭력적인 영화가 어떻게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도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서술의 명료함이 부족하다 보니 주장에도 힘이 떨어지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빠져 있다. 학생은 경쟁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례와 함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세 번째 원인인 폭력 영화에 대해서는 해결 방법을 생략하고 있다. 학생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예방책으로 나누고 있는 것들, 즉 공감 능력을 기르는 것이나 충분한 휴식을 주는 것은 사실은 모두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대안에 해당하는 것이다. 스스로 제기한 세 번째 원인에 대해서 대책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글의 구성에 있어서도 감점 요인이다.
상술한 몇 가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전체적인 흐름은 좋은 편이어서 대체로 매끄럽게 잘 읽히는 편이다. 다만 다섯 번째 단락은 약간 고칠 부분이 있다. 첫 문장에서 학교 폭력이 날로 잔인해지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곧바로 다음 문장에서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듯한 언급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은 글의 정합성과 관련된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다니는 학교 외에는 다른 학교의 폭력 실태를 파악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는 심각한 학교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부분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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