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69ㆍ사진)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퇴출 위기에 놓인 미래저축은행의 유상증자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그는 25일 퇴임 후 첫 공식 일정인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 탐방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이 아닌 제3자의 소개로 김찬경(55ㆍ구속)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만났고, 이후 계열사인 하나캐피탈에 투자를 검토해 보라고 했지만 이는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 과정에 관여한 적도 청탁을 받은 적도 없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인데, 어차피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내용을 숨겨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연찮은 대목이 많다.
김 전 회장은 김찬경 회장의 부탁을 받고 계열사에 투자 검토를 시켰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 회장을 만난 구체적인 시점과 소개시켜준 인물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다만, 고려대 동창인 천신일 전 회장이 다리를 놔줬다는 설(設)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김 전 회장이 소개자를 숨기는데 대해 권력형 비리로 비화하는데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초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촉발됐던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김 전 회장과 천 전 회장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금융 게이트'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3의 인물을 언급하면 또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고, 향후 검찰 수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미래저축은행 투자 검토를 지시했지만, 결코 압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금융 분위기가 위에서 압력을 가한다고 그대로 실행되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결과적으로 상업적 판단의 잘못은 있을 수 있어도 절대 압력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주장하는 '상업적 판단'을 가장 미심쩍은 대목으로 지목한다. 퇴출 수순을 밟던 저축은행에 145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이유가 석연치 않은데다, 가치 산정이 어려운 그림이나 담보 기능을 상실한 건물을 근저당 설정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 핵심층의 청탁에 따른 갑작스러운 투자'일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찬경 회장의 청탁→김 전 회장의 미래저축은행 투자 검토 주문→투자 실행'이 급하게 이뤄지면서 허술한 담보물을 잡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검찰이 김 전 회장에게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인 혐의는 배임이다. 문제는 배임이 성립되려면 김 전 회장이 업무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그가 미래저축은행 투자 건으로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얘기는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또 경영진이 사업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거쳤고 대가 없는 사업비 지출이나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면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김 전 회장은 "미래저축은행 투자를 검토해보라고 했지만 상업적 판단이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보고를 받았다. 담보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실무진에 물었을 때도 여러 안전장치를 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압력 행사가 아닌 실무진의 사업 타당성 검토를 거쳐 투자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검찰이 김 전 회장의 발언을 뒤집을 만한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지 않는 한 사법처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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