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던 길인데 … 이렇게 많은 근대의 문화유산이 바로 곁에 숨어있는지 몰랐어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성당 수녀원을 부인과 함께 찾은 김인성(34)씨는 "연애하던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라 아내와 함께 덕수궁을 찾았다가 정동의 근대 문화재를 처음 공개한다는 말에 꼼꼼히 둘러보는 중"이라며 "복잡한 서울 도심에 구한말 흔적을 담은 고즈넉한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일대 정동은 구한말 대한제국과 제국주의 열강의 힘 겨루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근대문화 유산 1번지다. 1883년 미국 공사관이 들어선 이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의 공관이 들어선 외교의 중심가였다.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선포도 여기서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역사나 한국 전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게 사실.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정동에 있는 근대 문화유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해 25일부터 27일까지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 재발견-대한제국으로의 시간여행'이란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특히 시민들은 성공회성당 수녀원 등 평소 갈 수 없었던 곳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옛 러시아공사관.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1년 동안 몸을 피해 머물던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1949년까지 공사관으로 쓰였지만 한국전쟁 중 건물이 부숴지고 지금은 망루만 남았다. 이 곳을 둘러본 김인성(33)씨는 "텅 빈 망루 안에 위태롭게 기댄 채 서 있는 나무 사다리가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관과 경운궁을 잇는 비밀통로를 직접 들어가 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경운궁(덕수궁)의 황실 도서관으로 쓰인 중명전도 시민들을 맞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1963년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생활 공간으로 쓰였다. 김민재(14)군은 "낡은 건물처럼 보이는 곳에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줄 몰랐다"며 "교과서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1906년 황족과 귀족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치된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修學院)이었던 옛 경운궁 양이재 앞마당에서는 기타와 함께하는 해금 공연도 열려 시민들의 귀를 황홀하게 했다.
아울러 대한제국 황궁이었던 덕수궁 석조전, 미국공사관,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의 중심지였던 정동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동관, 제헌국회 초대 대통령을 뽑았던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등도 숨은 볼거리다.
행사를 진행한 강임산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국장은 "오래되고 화려한 것만 문화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 투박해 보이는 근대문화 유산도 숨은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국민신탁 측은 시민 참여도 등을 감안해 이번에 공개 한 문화재들을 추가로 개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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