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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기름 모자라 중국에 내준 황금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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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기름 모자라 중국에 내준 황금어장

입력
2012.05.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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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간 원유도입량은 얼마나 될까. 한 대북 전문가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0만톤이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공식통계로는 1980년대 말 300만톤을 넘었다가 최근 50만톤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비공식 경로를 통해 들어가는 것도 있어 외교가에서는 그 양을 대략 100만톤으로 추정한다. 남한의 원유 도입량이 연 1억톤을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한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기름도 북한 주민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투기가 제 성능을 발휘하려면 1년에 적어도 2회 이상 훈련해야 하고 장갑차와 군함도 마찬가지인데 도입 원유의 절반 가량이 그렇게 군수용으로 쓰인다. 나머지 50만톤으로 전 주민이 나눠 써야 한다. 북한에서 휘발유, 등유, 경유, 항공유, 선박유 등 각종 유류가 얼마나 귀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북한이 최근 중국 어선 3척과 어민 29명을 나포했다 풀어준 사건은 이런 최악의 기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어선이 나포된 곳은 어류가 풍부한 북한의 황금어장이다. 그러나 북한 어민들은 바로 코 앞의 황금어장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고 싶어도 선박유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름이 그나마 있는 곳이 군부대이지만 그렇다고 북한 해군이 군함을 고기잡이에 활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중국 어선들의 '딱지조업'이다. 북한 해군 지방 부대가 담당 해역 별로 중국 어민에게 어선 수와 시간 별로 돈을 받고 그 증표로 조업허가증 격인 딱지를 건넨 것이다. 북한 해군은 이 딱지로 외화벌이를 하고 일부는 상납도 한다는 게 대북소식통의 전언이다. 지역에 따라 딱지 대신 깃발로 돈을 낸 중국 어선과 그렇지 않은 어선을 구분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깃발은 해마다 색깔이 바뀐다. 이러한 관행이 꽤 오랫동안 반복돼 정착됐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딱지를 받거나 깃발을 단 중국 어선들은 충분한 기름과 선진장비 등을 싣고 북한 해역까지 들어가 황금어장을 싹쓸이하면서 투자금 이상을 걷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나포된 어선은 딱지나 깃발 없이 불법조업을 하다 잡혔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기름난이 서해 황금어장까지 중국에 넘겨주는 일로 귀결된 셈이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소 양어장을 자주 찾은 것도 이러한 기름난과 무관하지 않다. 기름이 없어서 고기잡이 배를 띄울 수 없고 그렇다고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인민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계곡 등에 양어장을 조성, 물고기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료가 부족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서해 황금어장을 잘 관리하는 것은 사실 한국 어민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남북한 해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에게 북한과 남한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 어선이 불법 또는 편법으로 무리한 조업을 강행, 물고기의 씨를 말려 버린다면 결국 우리 어민의 어획량도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중국 어선의 탐욕과 뻔뻔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지난해 한국 해경 사망 사건 등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해 남북한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실제로 이번에 딱지 또는 깃발 조업을 한 중국 어선은 물고기떼가 남하하면 남한 해역까지 침범해 우리와 마찰을 일으키곤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북한은 중국 어선의 공동 피해자다. 중국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며 중국과 바다를 맞닿은 나라들 사이에서 이미 연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북한 당국에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중국 어선 대신 한국 어선이 북한의 황금어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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