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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한국의 '폴 고갱'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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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한국의 '폴 고갱'을 만나다

입력
2012.05.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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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누런 들녘, 가슴을 드러낸 구릿빛 피부의 처녀와 소녀가 그곳을 걷고 있다. 서른여덟에 요절한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유화 '가을 어느 날'이다. 자연의 원시성과 인간의 순수성이 어우러진 시골의 풍광을 향토색 짙게 표현한 작품이다.

근대 한국미술에서 향토적 서정주의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인성 화백을 기리는 '鄕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최근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에서 26일 개막했다. 회화와 드로잉 작품 75점과 지난해 말부터 신문 공고 등을 통해 수집한 관련 자료 19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일본을 통해 서양화를 처음 받아들인 대구화단에서 활동한 이인성은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의 색채와 정서를 은유적으로 그려냈다. '향토를 그리다' '향토를 찾아서' 등 그가 쓴 일련의 글에서 짐작하듯, '鄕(향)'은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화업의 중심축이었다. 향토는 고향 대구이자, 조국 산천인 동시에 예술적 고향이기도 하다.

이인성의 작품에선 표현주의 화가 폴 고갱의 영향이 다분히 읽힌다. 생전에 '가을 어느 날'과 구도와 표현이 흡사한 폴 고갱의 그림 '모성'을 엽서로 간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그림이 달리 보이는 것은 그 나름대로 구축해온 향토적인 색채 때문이다. 이 작품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당화'(1944)도 이번 전시에 출품됐다.

이인성의 화가로서의 삶은 16세 때인 1928년 당대 가장 권위 있는 화가 등용문이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첫 출품작이 입선하면서 시작됐다. 일본 신문에 '천재소년'으로 소개되며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도쿄와 대구를 오가며 활동했다. 1945년부터는 서울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인물화와 정물화에 매진한다. 붓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친 필치와 내면을 묘사한 자화상은 그의 표현주의 기법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가족이나 지인과 찍은 흑백 사진과 신문기사에서 소소한 일상도 엿볼 수 있다. 한 신문기사는 이인성(당시 24세)이 작업실 밖에 내걸었던 그림('아르스')을 두 명의 남자가 칼로 찢은 사건을 전하고 있다. 전쟁 통에 통금시간에 술에 취해 귀가하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어이없게 짧은 생을 마감한 이인성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8월 26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02)2188-6231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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