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동안 양파를 썰고 달걀프라이를 해서인지 아직도 눈은 얼얼하고 팔은 빠질 것 같아요."
25일 만난 서울시립대 김경원(26·환경공학과 4)씨는 사흘 전 힘든 노동으로 아직도 온 몸이 쑤신다고 했다. 1년 중 학생들의 가장 큰 행사인 축제 첫 날 새벽 5시부터 양파를 쉴 새 없이 다졌던 때문이었다. 서울시립대는 25일까지 진행된 축제의 개막 행사로 10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지역주민 초대형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2,000명이 나눠먹을 수 있는, 폭 20㎝, 높이 8㎝의 오므라이스가 100m나 이어졌다. 사용된 식자재만도 쌀 240㎏, 달걀 4,000개, 김치 80㎏, 돼지고기 40㎏, 표고버섯 20㎏ 등 어마어마했다.
김씨는 "내 손으로 다듬고 만든 오므라이스를 학교 식구는 물론 이웃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맛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며 "축제를 통해 이런 좋은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했다"고 말했다.
대학가의 '착한 축제'가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연예인 초청 공연이나 먹고 마시는 행사에 초점이 맞춰졌던 축제가 지역 주민, 청소노동자 등 소외된 이웃과 소통하거나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로 변모하고 있다.
한양대는 25일 끝난 축제에서 대학생과 청소노동자 간 소통을 위한 프로젝트 '대·청·소'를 진행했다. 축제 탓에 지저분해진 캠퍼스를 학생과 청소노동자가 밤늦게까지 함께 치우며 평소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눴다. 김소영(22ㆍ신문방송학과3)씨는 "한 공간에 사는 식구인데도 그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성공회대는 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의자 만들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손 품을 판 학생들에게는 축제에서 쓸 수 있는 임시화폐 스쿠(SKHU)를 나눠주고, 만든 의자는 축제가 끝난 뒤 교내 휴게시설에서 쓸 계획이다. 총학생회장 김수인(22ㆍ사회복지학과4)씨는 "경제적 이유로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아 큰 돈 없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소박하게 실천해 보려 했다"고 밝혔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술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 대학 축제에 대한 학교 안팎의 반성과 사회 공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어우러져 생긴 변화"라며 "학생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그들만의 잔치'라는 대학 축제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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