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원/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ㆍ박종대 옮김/플래닛 발행ㆍ376쪽ㆍ1만8,000원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는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노래했다. 미인을 보면 즐겁고 예쁜 꽃에 감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 그럴까. 미학은 미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애써왔다. 미의 기준이 사회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는 사회학과 미학이, 미에 반응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는 심리학이 맡아서 다뤄왔다. 여기 또 다른 질문이 있다.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요제프 라이히홀프가 묻는다. 굳이 아름다움이 필요할까. 진화의 목적이 살아남는 것이라면, 생명체가 굳이 아름다울 필요가 있을까.
라이히홀프의 2011년 작 <미의 기원> 은 미의 '생물학적' 뿌리를 파헤치는 책이다. '아름다움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큰 질문 아래 인간 사회와 생물 세계의 진화 과정에서 미가 차지하는 역할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의>
책은 다윈을 괴롭힌 공작의 꼬리깃 이야기로 시작한다. 공작이 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깃을 갖게 됐을까. 보기엔 근사하지만, 길고 무거워서 거추장스러울 터. 적의 눈에 잘 띄어 생존에도 불리할 텐데, 자연은 왜 이처럼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을 허락했을까.
고민 끝에 다윈이 생각해낸 것은 '성 선택설'이다. 암컷이 배우자로 화려한 수컷을 좋아하다 보니 암컷에게 잘 보이려고 그리 됐다는 설명이다. 하기는 공작뿐 아니라 다른 새들과 도마뱀, 개구리, 사슴 등 다른 동물들도 대체로 수컷이 아름답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짝짓기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그렇게 위험한 깃을 갖고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사람은 왜 수컷이 아닌 여성이 아름다운 성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유력한 이론이 자하비의 이른바 '핸디캡 이론'이다. 공작의 꽁지깃처럼 생존에 불리한 핸디캡을 안고도 살아남았다면 그 수컷의 능력과 건강은 입증된 셈이어서 암컷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배경 설명이다. 이 책의 본론은 핸디캡 이론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점은 공작의 꽁지깃이나 사슴 뿔처럼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해 보이는 것이 핸디캡이 아니라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야생 공작은 표범의 습격을 받으면 도마뱀 꼬리 자르듯 꽁지깃만 떼어주고 도망친다. 수컷의 화려함은 몸 속 신진대사와도 관련이 깊다. 알을 만들고 새끼를 키우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몸에 에너지가 남아 돈다. 그냥 놔두면 몸이 비대해져서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딴짓을 해서 에너지를 소비한다. 새는 화려한 깃과 위험천만한 곡예비행으로, 사슴은 뿔을 부딪쳐 싸워서 남는 힘을 쓰면서 암컷에게 자신을 과시한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기능인 셈이다.
여기서 저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꼭 그런 모습이어야 하는가. 답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 선택은 정해진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하게 열린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세차게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그러한 이탈, 곧'자유'다. 저자는 적응만 강조하는 수동적인 진화론을 비판한다.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아는 것을 모두 적응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진화 과정의 원칙은 필연이 아니라 가능성이고, 강압이 아니라 자유"라고 규정하면서, "그 필연과 자유 사이에 놓인 긴장으로부터 아름다움이 발전한다"고 강조한다. 긴장은 늘 움직이고 변하는 힘이기 때문에 거기서 태어나는 아름다움은 획일적일 수 없으며,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획일화는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설명한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생물종이 질병에 취약하고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미의 기원을 탐색하는 긴 여정의 끝에 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생명의 본성은 자유다.""환경의 구속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를 실현하려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개성 만세'쯤 될 것이다. 미남 미녀가 아니면 어떤가. 개성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참된 뿌리인 것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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