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가, 그리스 정당 역사상 최연소 당수, 6일(현지시간)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를 원내 제2당으로 이끌며 그리스 정계 핵심으로 떠오른 인물.
알렉시스 치프라스(37) 시리자 대표 얘기다. 수려한 외모에 특유의 카리스마, 뛰어난 화술까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운명을 한 손에 쥔 사나이'로 통한다.
이번 총선에서 긴축정책 반대와 구제금융 재협상을 기치로 내건 그는 "그리스 정부와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가 맺은 구제금융 협상은 무효" "지원을 끊으면 빚을 갚지 않겠다"는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연일 '배째라'식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연립정부 구성 실패에 이은 다음달 17일의 2차 총선을 앞두고'그렉시트'(Gr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로 유럽과 전 세계의 경제가 술렁이고 있지만, 그는 "이번 싸움은 민중과 자본주의 간의 전쟁"이라며 물러설 기미가 없다. 30대 후반의 젊은 정치인이 그리스의 앞날과 유로존의 미래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고교시절 학생운동 이끈 '골수 좌파'
그리스 군사정권(1967~74)이 몰락한 지 사흘 뒤인 74년 7월28일 수도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는 80년대 후반 고교재학 시절 공산당 청년조직에 가입해 정치를 시작한 '골수 좌파'다. 아테네국립공과대(NTUA)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좌파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95~97년 전국대학생회의(EFEE) 대표를 지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시나스피스모스(좌파ㆍ생태주의 연합)에 가입, 99년부터 2003년까지 당의 청년조직을 이끌었다. 2004년에는 당 중앙위원회의 교육ㆍ청년 담당 위원으로 선출됐다.
중앙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 때였다. 시나스피스모스를 포함한 좌파 세력들이 모여 2004년 결성한 시리자 후보로 선거에 나선 그는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 없던 그는 이를 발판으로 2006년 아테네 지방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8년 2월에는 그리스 정당 사상 최연소인 33세의 나이로 시나스피스모스 당수에 올랐고 2009년 10월 총선에서 의회에 입성한 뒤 시리자 대표 자리를 꿰찼다.
선동가인가 구세주인가
시리자가 이번 총선에서 긴축반대 여론에 힘입어 2009년 총선(4.60%) 보다 세 배가 넘는 16.78%의 득표율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리스 국민의 온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볼 순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 신물이 난 그리스인들이 "이 모든 고통을 끝내겠다"고 외치는 치프라스에게 열광하지만, 그가 위기의 해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고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전했다. 부정ㆍ부패로 찌든 무능한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데 따른 반사 이익이라는 지적이다. 시리자 내에서 조차 그의 주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아니스 드라가사키스 시리자 의원은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 그리스는 생존할 수 없다"며 "치프라스가 실제로 공약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BBC방송은 편안한 차림새로 오토바이를 타고 유세 현장을 누비는 모습과 정치인 치고는 비교적 적은 연 소득(7,100만원) 등이 대중의 눈길을 끌지만, "긴축에는 반대하나 유로존에는 남겠다"는 그의 모순된 주장은 안팎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학자 미란다 사파는 "긴축 반대와 유로존 잔류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치프라스가 유권자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도 "시리자는 둘 다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치프라스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긴축에 반대하는 폭력 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BBC방송은 다른 정치세력들이 치프라스와 손 잡기를 꺼리는 배경에는 이런 요인들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긴축반대의 아이콘이 된 치프라스에 대한 지지는 거품으로 끝날까. 2차 총선 일자가 확정된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존 제1당인 신민주당이 지지율 1위 자리를 되찾으면서 시리자 대세론은 서서히 기우는 형국이다. 초조함 탓인지 치프라스는 "집권하더라도 유로존에 잔류하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 물론 유로존 잔류의 전제조건이 구제금융 재협상이라는 고집은 꺾지 않았다. '긴축 없이는 구제금융도 없다'는 국제사회와의 치킨 게임은 이제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고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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