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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형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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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형제애

입력
2012.05.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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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같은 형제라도 성격은 판이하다. 장남이 점잖고 보수적이라면 동생은 활달하고 진취적이다. 형이 체제에 적응하는 성향이 강한 데 비해 동생은 판을 새로 짜려는 변혁 욕구가 강하다. 부모의 애정이나 먹을 것 입을 것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런 차이가 형성된다고 한다. 미국 영화 에서도 형제의 성격차를 잘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점이 조화될 때 형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 프랑스의 문인ㆍ비평가 에드몽 드 공쿠르는 정열적 활동가였던 8세 아래의 동생 쥘과 달리 내향적인 몽상가였다. 이들은 동생이 먼저 죽을 때까지 합작 형식으로 글을 썼고, 공쿠르라는 이름은 권위 있는 세계적 문학상으로 살아 있다. 두 살 터울인 '영화발명가'뤼미에르 형제, 죽어서도 함께 있는 반 고흐 형제의 우정은 또 어떤가. 아버지 소순(蘇洵)과 함께 중국 북송시대의 '삼소(三蘇)'로 불리는 소식(蘇軾) 소철(蘇轍) 형제의 우애와 문학적 경쟁은 찬탄과 부러움을 자아낸다.

■ 어제 62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김용수(1933~1950) 일병 이야기도 형제애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함께 입대한 형이 후방으로 가자고 하자 "저는 나라를 지킬 테니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키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형은 학도병이었던 동생을 보호하려고 자원 입대한 것 같다는 게 유족들의 말이다. 형제는 훈련소에서 헤어진 뒤 만나지 못했고, 동생을 그리던 형은 2년 전 신원확인용 DNA(유전자) 채취를 마치고 지난해 사망했다. 죽을 때도 동생 생각에 많이 울었다고 한다.

■ 강제규 감독의 영화 에서도 형은 군에 끌려간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다가 동생이 국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착각해 인민군 부대장이 되어 국군과 싸운다.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유골로 돌아온다. 형제애를 다루어 대히트를 했던 이 영화는 6ㆍ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발굴을 재촉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북한지역에서 최초로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 12구가 국내에 송환됐지만, 모두 3만~4만여 구의 유해가 있다니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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