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법 위반에 따른 정당한 조치인가, '괘씸죄'로 인한 정치적 보복인가.
빈민층을 대상으로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을 전문으로 하는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71ㆍ사진) 총재의 해고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유누스 총재가 법률상 정해진 정년을 넘겼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의 해임에는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법률은 공직자가 60세에 퇴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으로 운용되는 그라민 은행에 정년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부터 총재직에서 물러날 것을 압박해 온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은 3월 결국 유누스 총재를 해고하라고 그라민 은행에 지시했다. 유누스 총재는 그러나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견제가 해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법정 싸움에 돌입했다. 2007년 정계 입문을 선언한 유누스 총재는 하시나 총리에 맞서 나고리크 샤크티(시민의 힘)을 창당하고 총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시나 총리 등 기존 정치권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별 성과 없이 몇 달 만에 정계 진출을 포기했다. BBC방송은 "퇴직 연령보다는 정치적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고 전했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5일 유누스 총재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유누스 총재는 성명을 내고 "은행 활동이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직을 유지할 것"이라며 버텼지만, 일주일 후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탄압은 유누스 총재 해고에 그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재무부는 최근 그라민 은행과 연계된 기업인 54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라민 은행이 주주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자회사를 설립해 은행 헌장을 위배했다는 이유다. 유누스 총재는 "자회사들은 사회 비즈니스기업으로 독립적 기능을 한다"며 "정부가 은행을 통제하려는 술수"라고 비판했다. 최근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그라민 은행의 효능을 손상시키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촉구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부당한 언사라고 일축했다.
치타공대 경제학 교수 시절인 76년 빈곤극복 방안으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유누스 총재는 빈곤퇴치에 앞장선 공을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방문했다. 현재 그라민 은행 대출 이용자는 900만여명에 달하며 이중 대부분은 여성이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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