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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 동네 두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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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 동네 두 소녀

입력
2012.05.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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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웃 중에 자주 술을 하러 오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고 나름 인생을 즐기며 사시는 분이다. 그 분에게는 두 딸이 있고 서로 식구들끼리도 친하게 지내며 형님 동생 하는 사이다. 눈매와 입술이 아비를 꼭 닮은 그의 두 딸들은 마치 우리 딸들을 보는 것 같다. 어른들 앞에서는 다부진 표정을 숨기고 수줍게 인사하며 소심한 행동을 보이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 보인다.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내색도 하지 않고 또래들 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무엇인가 이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언지 딱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와 나는 두 딸들 앞에서는 유독 약해진다. 아이들의 시큰둥한 인사만 보아도 가슴 한 켠이 찡해 지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형님은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긴 한 숨을 쉰다. 그런 날은 유난히 술을 더 드시고 늦은 귀가를 하신다. 그 두 자매는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다. 형님 말에 따르면 성적은 언제나 바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분은 두 자녀의 성적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시험으로 결정 나는 학교 교육에 별로 가치를 두고 있지 않기에 그것 때문에 속을 끓이거나 가슴 상하진 않는 분이다. 단지 두 딸 들이, 우리의 사춘기 소녀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환한 웃음과 자신감이 학교 교육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 버린 것이 못내 서글프고 애처로운 것이다. 이 아이들은 성적표를 받아온 날이면 더욱 기가 죽는다. 그 분은 성적에 개의치 말라고 기운을 넣어 주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신 두 아이는 엄마한테 점점 히스테리를 부리고 매사 모든 일이 엄마 때문이라며 점점 달려드는 강도가 심해진다. 그 형님의 부인은 아이들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겨주는 순위에서 밀려나면서 자신의 인생에 더욱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형님의 집은 점점 웃음이 마르기 시작했다. 곰곰 생각해보았다.

부모들이 1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거쳐가야 하는 필수 과정들을 잘 통과하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지 못해서 불편했던 그런 최소한의 것들을 아이들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1등이 대접받고 자신감 넘치는 그런 교실에서 매일 살아남고 있다.

굴러가는 돌만 보아도 까르르 웃어야 할 소녀들이 매일같이 책상에 엎드려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감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예의범절조차 없어 보이기 쉽다.

말투나 행동, 매사에 긍정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제 아비 친구들이 찾아오면 건성으로 빨리 인사 하고 방으로 휙 들어 가 버린다. 어릴 적 달고 살았던 환한 웃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자칫 건방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혼자 그 여운을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슬픈 일이 아닌가.

엘리트 중심의 사회. 누가 이렇게 만들었던가. 어쩌면 우리 세대가 물려준 암울한 미래를 아이들이 맛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달려왔던 치열한 과거. 자유를 위해 삶을 위해 투쟁적이었던 우리의 젊은 날은 그래도 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이 발로 뛰어 다니며 쟁취했던 현장이라는 삶의 터전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되어 버렸다. 벗어나고 싶어도 부모 혹은 사회의 기대치를 함부로 떨쳐 버리지 못하는 착한 근성도 작용을 할 테고, 말없는 반항과 불만도 늘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행여나 아이들이 가진 본래의 재능과 소질이 가야 할 길을 못 찾고 시들어 질까 염려된다. 수능점수 만점과 유창한 회화 능력은 별개이며 명문대를 나온 것과 높은 연봉은 별개이다. 그렇다고 재산과 행복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세상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 있게 행복하게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다, 두 어린 소녀들아. 우리 형님의 집에, 너희들의 방 안에서 소박한 웃음이 피어나길 바래본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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