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는 모두 3명이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서 25명의 무소속 당선자를 배출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그 만큼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정당간 싸움이 치열했다.
이런 이유에서 무소속으로 당당히 금배지를 단 김한표 당선자(경남 거제)에게 눈길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김 당선자의 지역구인 거제는 새누리당이 역대 선거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여당 텃밭이란 점에서 그의 당선은 더욱 의미가 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과 2008년 18대 총선에도 출마했었다. 12년간 절치부심 끝에 2전 3기를 이뤄낸 김 당선자를 만나봤다.
“당선되니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이 연락을 해오거나 지역 유지나 기관장들이 먼저 찾아옵디다.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 내 삶에서 가장 바뀐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간 건성으로 대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고개를 숙인다는 점에서 씁쓸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진 않더군요.”
김한표 당선자는 선거 이후 줄곧 지역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당선인사를 다녔다. 출ㆍ퇴근길에서 만나는 직장인이나 시장 등지에서 접하는 주부들도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받는다고 한다.
김 당선자는 “이전에는 표를 달라고 내가 먼저 다가갔다면 이제는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지역 현안을 언급하며 말을 건넨다”면서 “언뜻 들어도 국회의원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일단 수첩에 빼곡히 적어놓고 하나 둘 해결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 사람들과 만남 약속이 늘어난 것이다.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엄청 늘었다. 여기저기 공식 행사에 불려 다니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만남 약속을 뒤로 미루거나 아니면 아예 만남 대신 전화로 용무를 해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어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김 당선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고개를 뻣뻣이 했다가는 금방 지역주민들에게 외면 받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약속을 불가피하게 미루게 될 경우 이런 점을 의식해 최대한 통 사정하듯 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사무실을 얻고 홍보물을 만들고 최소한의 선거운동원을 고용하면서 2억원 정도를 썼다. 개인적으론 큰 돈이지만 총선에 나간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면 그리 많이 들어간 건 아니라고 한다. 지인들이 한푼 두 푼 모아준 정치 후원금과 가족ㆍ친지들이 마련한 자금으로 간신히 2억원을 만들어 선거전에 임했다. 총선에 두 번이나 나왔다 떨어졌기 때문에 이젠 돈을 구할 데도 별로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뛰었다고 한다.
남녀 각 1명이 상주하는 거제사무실은 월 200만원씩 내는 70여 평 규모의 공간이지만 그에게는 지역주민을 연결하는 야전 사령관실 같은 곳이다. 국회가 개원해도 매주 주말 등 최소한 2,3일은 지역에 내려와 그간 주민들이 쏟아낸 고충을 일괄적으로 정리해 서울로 가져갈 계획이다.
국회 개원을 앞두고 그는 보좌진부터 먼저 구성했다. 특이한 면접 방식을 통해 보좌진을 골랐다.
그는 “면접 보는 보좌진들을 모두 거제로 내려 오라고 해 거제에서 시험을 치렀다”며“명색이 내가 거제 지역 국회의원인데 보좌진들도 나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거제라는 지역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서 근무할 6명의 보좌진이 추가로 꾸려졌다. 지역 사무실에 있는 2명과 서울 의원회관의 6명 등 총8명이 김 당선자의 최측근 참모진이 된 것이다. 김 당선인은 면접을 끝낸 후 보좌진 들과 1박2일 동안 거제지역 투어를 나서며 19대 국회에 임하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박정호 보좌관은 “당선자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 마다 보좌진에게 거제에 다녀오라고 한다”며 “지역구 의원의 생명은 지역을 샅샅이 파악하는 것이라고 틈만 나면 강조하고 있어 보좌진도 수시로 거제를 내왕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선거 때 쓰던 소나타 차량 대신 그랜져 승용차를 장기 렌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선거 때를 제외하곤 ‘오너 드라이버’였지만 당선된 이후 고향 친구의 소개로 운전기사도 새로 뽑았다고 한다.
김 당선자는 서울에 거처가 있어 별도의 집을 구하는 다른 의원들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미혼 자녀들이 사당동 아파트에 살고 있어 주중에는 여기서 여의도를 오갈 계획이다. 의원회관 외에 별도의 사무실을 구하지 않기로 해 서울 집이 사무실이자 주중 거처가 됐다.
김 당선자는 지난 17일 당선자 연찬회에 참석해 중앙 정치무대에 첫 신고를 했다. 그는 “여야 의원들이 어려운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며 찾아와 악수를 청하고 반겨줘 기분이 좋았다”며 “위대한 선택을 해준 거제 시민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국회 상임위는 국토위를 신청하려 한다. 그는 “거제 지역은 국도확장, 도로 포장 시설 등 산적한 현안이 많아 국토위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의정활동을 하면서 종종 경남도청에 가서 김두관 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거제지역 관청과 경남도 서울사무소를 수시로 방문해 공무원들을 만날 생각이다.
하지만 무소속 의원이란 점에서 여야 모두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실제 지역의 기초ㆍ광역의원은 거의가 새누리당 소속이란 점에서 사실상 적대적 같은 관계다. 이런 이유에서 새누리당 입당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으나 성추행 논란과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된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의 출당으로 150석이 되면서 과반이 무너졌다. 김 당선작 입당하면 다시 151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김 당선자는 “일단은 무소속으로 입성하되, 국회 개원 이후 새누리당 입당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의 지역인 거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지역이다. 김 당선자는 “당선 후 인사차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를 방문했는데 외출 한 상태라 손명순 여사만 만나고 왔다”며 “평소 같으면 찾아 뵙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확실히 이 부분도 신분 변화에 따라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당초 이 지역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결국 출마의 꿈을 접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무소속 의원이라 늘 여야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려 한다”면서 “특히 정치자금 부분도 철저히 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 ‘짠돌이’같은 의정 생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 김한표 당선자는 누구
김한표 당선자는 1954년 경남 거제시 장목면 관포리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동아고를 나온 뒤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경찰 간부 후보생(31기) 출신으로 사회 첫 발을 디딘 그는 5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호실 제101 경비단을 첫 부임지로 배정받았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계속 근무하게 돼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경호하는 흔치 않는 이력을 갖게 됐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고향(거제)이 같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경찰 경호를 총 지휘하는 임무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후 고향인 거제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뒤 제복을 벗고 마산 창신대학 경찰행정학과에서 초빙 교수를 하다가 2000년부터 정치권을 노크한 결과 삼수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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