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일본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뒤집는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3년여 동안 우리 법은 물론 일본의 판례와 논문까지 파고든 대법관, 재판연구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와 역사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민족적 자존심이 작동한 결과"라고 대법원 관계자들은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4일 "이번 판결은 2009년 3월 본 사건이 접수된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기각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문을 비롯한 각종 판례와 논문 등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법 원리와 상충하지 않는지 심도있게 검토해 나온 결과물"라고 설명했다.
가령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판단은, 국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규명했던 것처럼 국가책임이 인정되는 군내 자살과 같은 손해에 대해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국내법에서 이론적 근거를 끌어왔다.
특히 구 미쓰비시, 구 일본제철과 현재의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의 법인격이 다르다고 판단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례를 뒤집기 위해 집중적인 검토가 이뤄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두 회사의 법인격이 다르다고 판단한 일본의 판례와 관련 논문을 검토한 결과 오히려 두 회사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 등이 현재 법인에 그대로 승계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전후 배상문제 등 일본 내부의 특별한 상황에 따라 제정된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 등을 이유로 채무 면탈이 된다고 본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단을 뒤집은 핵심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최고 법원이 동일한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은 국가간 판결문 승인절차 관련 규약이 마련돼 있지 않은데서도 기인했다. 한 국제법 변호사는 "미국과 영국은 양국간 판결문 승인절차 관련 규약을 맺어놓아 상대국 최고법원의 판결을 거의 그대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 법원 판사는 "만약 원고들이 일본 회사들의 국내 자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일본에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양국간 판결문 승인절차 관련 규약이 필요한데 그게 없는 상태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