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찌 알았으리요. 그 모친의 천명이 그만이든지 조물이 시기함인지 콩쥐가 태어난 지 겨우 백일 만에 조 씨 부인이 세상을 영영 하직한 바 되니, 최만춘은 뜻하지 않게 중년에 홀아비 신세가 되어 버리더라. 만춘은 몸이 외롭고 쓸쓸할 적이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어린 콩쥐를 안고 다니면서 동리 아낙네들의 젖을 얻어 먹이니, 하루이틀도 아니요 일 년 이년을 그리하였으니, 그 고생이 어떠하였으리요. 철모르는 콩쥐가 젖 찾는 소리는 죽은 어미의 혼이 가령 있을진대 눈물이 변하여 비라도 되었으리라.
최 씨가 과부 배씨와 재혼하고, 데리고 온 딸 팥쥐와 함께 모녀가 콩쥐를 부려먹고 구박하는 대목에는 모두들 한숨을 쉬거나, 저런 몹쓸 년! 어허 저런 불여우 같은 것들이 있나? 하다가도 나무 호미를 부러뜨리고 밭두렁에 앉아 우는 콩쥐 앞에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대신 밭 갈아주는 대목에는, 에그 불쌍한 것, 하늘이 도와주는구나! 하면서 제 일인 듯 손뼉을 치고 기뻐했다. 신이는 이러한 좌중의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감동의 느낌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마치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온몸이 달아올랐다.
약방 사랑에서 이 의원이 가만히 듣자 하니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고 제각기 두런거리는 소리도 들려와서 처음에는 행랑것들이 모여 앉아 도토리 윷이라도 노는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개는 모두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두런두런하며 혼자서 애기를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와 귀를 기울이니 신이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 의원이 일어나 설렁줄을 당기자 방울이 떨렁거렸고 행랑에서 넋을 잃고 앉았던 마당쇠가 벌떡 일어나 득달같이 달려갔다.
찾아 계시옵니까?
너희들 게서 뭣들 하고 있느냐?
의원이 물으니 마당쇠는 신이 나서 자랑처럼 말했다.
지금 작은도련님이 얘기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 얘기책 가지고 내게 오라 일러라.
마당쇠가 행랑으로 돌아와 좌중에 알리자 모두 찔끔하여 자라목이 되어 흩어졌고, 신이는 책을 들고 약방으로 가는데, 동이 어멈은 걱정이 되어 툇마루까지 쫓아나와 눈 바라기를 했다.
역정 내시면 다시는 않겠다고 그러세요.
신이 약방 사랑에 들자 의원은 얘기책을 받아 몇 장 들춰보았다.
이게 웬 거냐?
네 장터에 책전이 섰기로 몇 권 샀습니다.
의원이 보아하니 언문 방각본이거늘 알은체하기도 쑥스러운 바이어서 얼른 되돌려주며 말했다.
이런 것은 부녀자들이나 읽는 것인데, 요새 글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게냐?
예, 시부(詩賦)를 익히는 중입니다.
너도 몇 년 뒤에는 향시를 볼 자격이 있다.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신이는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도 문과 향시를 볼 수가 있습니까?
의원은 맏아들 준이와의 일이 떠올랐지만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가 서자이기는 하되, 홍패를 받고 관직에 나아가신 선친의 유일 장자로서 본가에 적자로 올라 있으니 하자가 있을 리 없다. 준이는 물론이려니와 너의 경우에도 너는 나와 준이 어미의 차자로 올라 있으니 무슨 흠이 있겠느냐. 내가 네게 향시를 보라는 것은 벼슬을 해보라는 얘기가 아니라, 네 실력을 한번 가늠해보라는 말이니라. 네가 의원이 싫다면 요즈음 시속에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 제일 좋기로는 한 식구 갈아먹을 만큼의 땅마지기를 장만하여 힘써 일하고 독서하며 사는 청복(淸福)의 삶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책을 아들에게 내주며 말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이 또한 나쁠 게 있겠느냐, 다만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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