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24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길고도 힘든 법정 싸움을 계속해 왔다.
1995년주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법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때마다 좌절했고, 이 과정에서 고령의 피해자들은 하나둘 눈을 감았다.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소송의 원고 5명은 이미 모두 숨졌다. 신일본제철 상대 소송 원고 5명 중 1명은 기나긴 재판에 지쳐 소송에서 빠진 상태다. 이 사건의 변론을 맡은 최봉태 변호사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오랜 기간 재판이 진행되면서 소송 원고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 분 한 분 눈을 감으실 때마다 너무나 괴로웠다"고 말했다.
시작은 1995년 일본에서 낸 소송이었다. 고 박창환씨 등 5명은 그 해 12월 일본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첫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지방재판소와 고등재판소는 원고 청구를 기각했고, 한국의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7년 상고 기각을 확정했다. 여운택(89)씨 등 2명이 1997년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낸 소송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2년 이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한국 법원의 문도 굳게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박씨 등은 2000년 5월 부산지법에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과 같은 취지로 소송을 냈으나 2007년 패소했고, 이듬해인 2008년 부산고법에서도 역시 패소했다. 여씨 등도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내고 항소까지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종군위안부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등 일제의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적지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본 재판소는 "강제동원 자체는 위법이 아니고, 다만 동원의 실행과정이나 동원 이후 노동을 시키는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가 있었을 수 있으나 한일협정, 소멸시효 완성 등으로 인해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취지의 판결을 계속했다.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재판에 회부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라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렇다 보니 이번 대법원 선고 결과는 사실상 의외였다. 소송을 지원했던 이희자(69)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날 법정에서 "선고 결과가 좋게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르신들을 이 자리에 모시지도 못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패소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여론의 무관심이었다. 일각에서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악성 민원인, 그들의 변호인은 순진한 노인들을 상대로 변론 비용을 뜯어내는 사기꾼 정도로 의심하는 시각까지 있었다. 최 변호사는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대였다"라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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