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조합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노조는 지난 25년 간 사회변화의 중요한 동력이자 5대 파워집단의 하나로 대접받아 왔다. 민주화 이후 퇴조한 학생운동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정치적 비중을 높여왔을 뿐 아니라 기업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경제 권력으로 행세하기도 했다. 외국인투자자들에게도 한국의 노사관계는 항상 리스크가 큰 변수였다.
그러나 매년 봄마다 위세를 떨치던 노조의 임금투쟁이나 철마다 등장하던 여러 형태의 정치파업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설사 어느 사업장에서 절박한 파업투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노동계 전체의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MBC와 KBS를 비롯한 언론사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양 노총은 구경만할 뿐 지원투쟁은 고사하고 누구하나 나서서 대화채널을 트고 타협적인 해법을 모색하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을 달궜던 한진사태나 홍익대 청소용역문제는 노조의 분열과 노사불신으로 더 꼬여가고 있다.
전투적인 노조가 힘을 잃고 상시적인 노사불안이 사라지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평화와 안정이 노조의 성숙과 노사관계 발전의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최근 노사갈등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쌍용차나 한진사태, 그리고 언론파업 등은 갈등이 사업장 내에서 해결되지 않고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된 사례들이다. 이는 노사갈등이 노사관계 시스템 내에서 원만하게 소화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양 노총의 정치활동이 조직분열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정치활동은 노사관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지금 양 노총은 정당정치에 너무 정신이 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노조의 정치활동이 조직분열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징조이다. 취약한 조직력과 교섭력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정당과 손을 잡았다가 오히려 조직 전체가 정파적 대립으로 갈라지는 잘못을 저지르는 꼴이다.
노조가 힘을 잃고 지리멸렬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조는 그래도 160만명의 유료 조합원을 갖고 있는 한국 최대의 사회조직이자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공식적인 대변기구이다. 또한 전태일에서 비롯된 한국 노동운동의 자주적인 전통과 투쟁성은 적어도 아시아 노동운동의 자랑일 뿐 아니라 선진국다운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지금 고질적인 고용위기와 양극화로 사회통합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몇 년째 사회통합의 해법을 찾지 못해 선진국의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노조는 이 고비를 넘기는 중요한 동력이자 국민경제 운영의 파트너로 그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노조는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인가. 노동계가 지금처럼 간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야당의 힘을 빌려 노동법을 개정해 교섭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노동계의 전략이다. 그런데 과연 노동법 개정으로 노조가 과거의 위세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 노조의 20년 헛수고를 보거나 비정규직 보호법을 둘러 싼 우리의 10년 공방을 복기해보더라도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양보해야 길이 열린다. 전태일이 버스비를 아껴 후배들 풀빵을 사주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에 의한 교섭력 강화보다 양보와 타협에 의한 지지확대가 더 큰 힘이다.
노동계는 임금삭감을 감수하고라도 실근로시간을 단축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요구할 수 있다. 정치권이 대화 테이블을 만들고 정부와 노사단체가 일자리를 위한 국가전략에 합의한다면 노조에게도 탈출구가 열릴 수 있다. 노조는 결국 노동대중의 지지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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