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가 700만명을 넘고 도박 중독자도 600만명이나 됩니다. 200만에 이르는 인터넷 중독자까지 합치면 '중독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살아서 경험하는 지옥인 중독에서 벗어나야 나뿐만 아니라 가정의 행복도 이룰 수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중독(斷中毒)사목위원회 위원장인 허근(57) 신부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전하는 메시지다. 13년째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를 이끌고 있는 허 신부를 가톨릭출판사 건물 5층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자신의 단주 경험을 털어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7대째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허 신부는 한때 '삼형제 신부의 맏이'라는 자랑스러운 별칭보다 '알코올 중독 신부'로 더 유명했다. 군대에서 처음 술을 접한 허 신부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8병, 맥주 24병을 들이켤 정도의 주당이 됐다. 술이 덜 깬 상태로 간신히 아침 미사를 마치자마자 저녁까지 해장술을 마셨고, 말리는 신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몸무게가 47kg까지 내릴 정도로 건강도 나빠졌다.
그러니 신부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을 리 만무하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 신부였던 허 신부는 "추기경님은 내가 비서가 된 걸 좋아하셨다. 당신이 술을 잘 못하시니까 행사 때 당신에게 돌아오는 술잔을 내가 대신 다 비웠다"며 "그 바람에 내가 비서를 한 게 아니라 추기경님이 내 비서 노릇을 한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1년 간 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끝에 지금은 성찬례 때 포도주조차 마시지 않을 정도로 단주에 성공했지만, 당시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 경험은 그의 시집 <그 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2001년)과 <나는 알코올 중독자> (2004년) 등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나는> 그>
허 신부는 모든 중독이 마찬가지지만 술은 정말로 혼자 끊기 어렵다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은 입에 담기 어려운 패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심각한 병입니다. 제하분주(濟河焚舟)의 각오로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외로워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알코올 중독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제가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하는 김옥균 주교의 충고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중독을 인정하고 치료를 시작했지요." 제하분주는 <춘추좌씨전> 에 나오는 병법 중 하나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적진에 침투한 뒤에 타고 간 배를 불태워 버린다는 뜻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임한다는 의미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 정경세가 금주를 다지며 이 말을 내세웠다. 춘추좌씨전>
허 신부가 알코올 중독자 돕기에 나선 것은 그만큼 단주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는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게임, 도박, 약물 등 다양한 중독을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바른마음바른문화운동본부를 결성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허 신부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알코올에 중독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대기업 CEO, 변호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왜 술에 중독되는가 따져보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수치심 탓에 숨기지 말고 스스로 중독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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