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길 끔찍이도 싫어했던 내가 소풍 말고 수학여행 말고 졸업여행 말고 진짜배기 내 멋대로 여행을 떠나본 건 약 십 년 전 경주행이 처음이었지. 마음에 뭔가 부대끼는 일이 있어 주섬주섬 짐을 꾸려 아무런 계획 없이 터미널로 향했고 심야 우등버스 가운데 쭉 이름을 읊조려가며 그 하나를 골랐더랬지.
창 밖은 깜깜했고, 버스 안은 고요했고, 한잠도 자지 않고 도착할 때까지 90도로 꼿꼿이 앉아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때 비로소 인생에 비유되는 그 '길'의 의미에 대해 실감했던 것도 같지. 두렵고 막막했으나 누군들 그 상황 속에 놓이지 않는 자 있겠는가 싶어 옆자리에서 코를 골며 잠든 채 자꾸만 머리를 내 쪽으로 기대오던 한 군인에게 살짝 어깨를 빌려주기도 했었지.
그렇게 도착한 경주에서 나는 혼자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자는 사흘간의 여행을 충실히 이행했지. 함께 표를 끊어온 이 없고, 게서 따로 만난 이 없으니 모든 관광지에서 표는 딱 한 장씩 끊은 게 현실이었다지만 실은 자연이 늘 함께였다지.
여기저기 봉긋하게 솟아오른 큼지막한 무덤들, 그 곁에 우직하게 우거진 나무들, 꽃들, 새들, 그리고 바람… 무덤 크면 뭐하나 어차피 죽으면 죽어질 인생들, 그러니 화를 내면 무엇하고 미워하면 무엇하고 복수하면 무엇하랴. 자연이 아니라면 끝끝내 교만할 수밖에 없을 우리들, 강정마을 왜 지키려는지 아직도 모르겠냐고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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