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걸려봤다는 균. 2만 년 전에 살던 옛 조상도 걸렸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균 중 하나. 강산성인 위 속 환경에서 멀쩡하게 사는 희한한 균. 바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이하 헬리코박터)다. 이 균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들이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학계는 이 균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 중이다.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위암이 많은 한국인의 경우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감염 100명 중 한두명꼴 위암으로
헬리코박터는 십이지장과 연결되는 위의 아래쪽 부위인 유문(파이로리)에 주로 사는 나선(헬리코) 모양의 균(박터)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균을 확실한 발암인자(발암등급 Ⅰ)로 지정해놓았다. 만성위염과 위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도 세균이기 때문에 없애려면 항생제를 먹으면 된다. 위산이 있어야 사는 독특한 균이니 위산억제제를 함께 먹으면 효과가 더 높다. 민영일 비에비스나무병원장(소화기내과 전문의)은 "항생제 2종류와 위산억제제 1종류를 7~14일 먹으면 (헬리코박터가)80% 정도 없어진다"며 "균을 완전히 없애고 나면 1년 안에 재발할 가능성은 2, 3%로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사람 100명 중 실제로 위암이 생기는 경우는 1, 2명 정도다. 헬리코박터를 발견해 치료하고 난 뒤에 위암이 생기기도 한다. 헬리코박터 때문에 반드시 만성위염이나 위암에 걸린다고 못 박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병들처럼 위암 역시 어떤 한 가지 요인만 아니라 환경이나 습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길 수 있다. 헬리코박터를 없애고 나서 위산이 지나치게 많아져 역류해 오히려 식도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보고됐다. 헬리코박터가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순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위암을 예방하기 위해 헬리코박터를 꼭 치료해야 하는지는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입으로
헬리코박터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어떻게 옮겨 가는지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가장 확실한 경로로 가족 내 감염과 구강 감염을 꼽는다. 감염된 사람의 대변이나 침 등에 섞여 몸 밖으로 나온 헬리코박터가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간다는 얘기다. 헬리코박터를 갖고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구성원 간 헬리코박터 종류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조사했을 때 엄마와 자녀 간 일치도가 56%로 높은 반면, 아빠와 자녀는 일치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부부 사이의 일치도는 22%로 나타났다. 관계가 밀접할수록 감염이 잘 일어난다는 의미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높은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도 나온다. 국이나 찌개, 반찬 등을 여럿이 함께 먹고, 엄마나 할머니 등 가족이 아기에게 밥을 먹일 때 음식을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등의 문화가 감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의 46.6%, 성인의 69.4%가 헬리코박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헬리코박터에 감염되면 초기엔 별다른 증상이 없고 메스껍거나 몸살처럼 앓다가 심해지면 만성위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위염이 오래 되면 위 점막이 얇아지고 주름이 생기며 거칠어진다. 이게 비정상적인 세포나 조직으로 변하고 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날숨으로 감염 여부 확인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헬리코박터를 발견하면 대부분 치료를 권하는 편이다. 소화불량이나 복통 등이 있으면 내시경보다 헬리코박터 치료부터 고려하기도 한다. 서양인에겐 동양인에 비해 헬리코박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헬리코박터 감염이 흔하고 위암도 많은 상황에선 뱃속이 불편하거나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생기면 먼저 내시경으로 원인을 살펴본 다음 헬리코박터 치료 여부를 결정하라는 게 많은 전문의들의 조언이다. 민 병원장은 "다만 만성위염이 있다든지 위, 십이지장궤양을 앓은 경험, 위암 가족력, 위암 수술 후라면 헬리코박터 치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헬리코박터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검사법은 두 가지다. 내시경으로 위 점막 조직을 떼서 배양해 균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과 풍선처럼 생긴 기구를 불어 호흡으로 나온 공기 중에 헬리코박터가 만들어내는 특정 효소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호기검사)이다. 요즘에는 정확하면서도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호기검사를 많이 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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