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 그런가, 나이가 들어 그런가, 교복 입은 여고생들 삼삼오오 지나갈 때 환해진 얼굴로 그들의 동선을 좇던 내가 있더랬다.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엄마 미소를 짓던 나더란다. 에이 들켰군, 들켰어.
버스정류장에 서서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어대는 소녀들을 보면 그 주제 뭔지 몰라도 슬쩍 끼고 싶어지고, 서점 문학 코너에 서서 긴 머리칼이 다 쏟아지도록 책에 집중하는 소녀들을 보면 그 내용 뭔지 몰라도 참견하고 싶어지니 이 오지랖은 대체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일까.
고등학교 3년간은 나도 붉은 벽돌색 체크무늬 교복에 흰 양말을 신은 채 등하굣길을 오가곤 했더랬다. 입학 때 무릎 아래로 맞춘 엄마표 치마 길이는 그 후로 조금조금씩 짧아져 어느 순간 학생부 선생님 앞에서 그 치수를 재기에 이르렀고 그럼에도 무사통과된 날이면 머잖아 미니스커트로 분할 내 핑크빛 자유에 들떠 있기 마련이었지.
왜 진작 몰랐을까. 방과후 진짜 하고 싶은 친구들만 남아 배구를 할 때,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 입고 텅, 텅, 배구공을 쳐 올릴 때, 공이 좋아 오로지 공만 보고 달려가던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집중력, 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내 얼굴을. 그러고 보면 그 여학생들, 그 길이 불길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었을까. 연예인을 바라다 연예인에게 버려진 그 여학생들, 배꽃 지듯 언젠가는 땅에 떨어지는 게 배구공의 운명임을 예상키나 했으려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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