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위관리가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직전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한 사실이 23일 밝혀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날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NCPC)의 조지프 디트라니 소장이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통인 디트라니 소장은 지난달 7일 민간 항공기를 이용해 미국 자치령 괌을 출발, 서해 상공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측 인사와 만나 미사일 발사 및 3차 핵실험의 중단을 설득하고 당일 평양을 빠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기정사실화한 시점에 북한을 방문해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특사를 보내 입장을 전달했다는 관측이다. 디트라니 소장이 북한 최고위층을 면담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트라니 소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북한 동향을 브리핑하는 비선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3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협상 특사를 했으며 2009년 8월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그러나 한미 당국은 디트라니 소장이 북한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물론 방북 사실 자체를 함구하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어떤 식으로든 말할 게 없다”며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 중인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이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이는 특사 파견이 외견상 성과를 내지 못해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은 디트라니 소장이 방북한 지 6일 뒤인 13일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 추가접촉에 따른 통미봉남의 비판론이 다시 제기될 수 있는 점에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강조하는 굳건한 한미동맹 아래, 북한에 대해 겉으로 강경하고 뒤로 협상하는 미 정부의 흐름이 목격된 것도 부담이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경색됐던 북미 관계가 전환하고 있다는 신호는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북한 외무성은 3차 핵실험 유예의 뜻을 담은 발표문을 22일 발표했지만 미국에는 뉴욕채널을 통해 그 뜻을 더 일찍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눌런드 대변인은 “우리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며 북한에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비록 북미가 아직 자신의 입장에 서 있지만 상대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를 지닌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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