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이 있는 서울 정동 일대는 구한말 역사의 현장이자 근대유산 1번지다. 1883년 미국 공사관을 시작으로 서양 여러 나라 공관이 들어선 외교 중심지였고, 최초의 신식 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비롯해 서양식으로 지은 성공회성당과 정동제일교회, 신식 병원들도 이곳에 자리잡아 근대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가 됐다. 1905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등 대한제국의 영욕을 지켜본 곳이기도 하다.
정동의 근대유산을 돌아보며 대한제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행사가 25~27일 정동 일대에서 벌어진다. '근대유산 1번지_정동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이 마련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주관하고 이화여고 성공회성당 등 이 지역 근대문화유산을 소유한 여러 기관이 참여한다. 대한제국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찾아 정동 일대를 누비는 역사 체험, 근대유산 건축물의 내부 공개,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개막식은 25일 오후 3시 대한제국 황실도서관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다. 고종황제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는 의식을 재연하고 소설가 김종록씨가 정동의 역사성과 근대시기 한국 청년들의 꿈을 주제로 강연한다.
평소 개방하지 않던 정동의 근대문화유산 건물들도 26일 하루 동안 들어가 볼 수 있다. 성공회성당은 지하묘역과 종탑, 수녀원을 처음으로 개방한다.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을 공개한다.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의 유관순 교실, 구세군중앙회관도 개방한다.
26일은 음악회와 연극 공연, 무성영화를 볼 수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정동극장 마당에서 하는 '신 소춘대 유희'는 1902년 '소춘대'라는 극장에서 했던 공연을 재해석한 것이다. 야외 음악회는 경운궁(덕수궁의 옛이름) 양이재(오후 4시)와 구세군중앙회관(오후 2시)에서 열린다. 양이재는 대한제국 시절 황족과 귀족 자제를 가르치는 학교인 '수학원'으로 쓰던 건물이다. 1934년 나온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오후 5시 이화100주년기념관에서 상영한다. 현재 필름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인데, 음악과 노래를 넣고 배우 조희봉이 변사로 출연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