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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국경 밖의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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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국경 밖의 한인들

입력
2012.05.2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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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이란 책을 통해 러시아에서 한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하고 스러진 한 화가의 삶을 접했다. 변월룡은 척박한 연해주에서 1916년에 출생해 가난 속에 성장했지만, 동포들이 모아준 돈으로 화가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스탈린의 갑작스런 강제이주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음에도, 그는 그림에만 매진해 러시아 명문 레핀미술대 교수이자 특출난 화가로 성장했다. 그는 연해주의 가난하지만 끈끈한 정이 있던 한인촌에서 배운 한국어를 평생 갈고 닦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냈고,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미술대에서 머물던 1년 여의 시간 동안 현대미술의 기법을 전수해 학장직을 제의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과 냉전체제, 그리고 남북분단은 이 예술가의 일생을 관통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러시아에서도 북한에서도 변월룡은 자신을 온전히 정착시키기 힘들었다. 그는 김일성이 중국과 소련출신 인물들을 축출하는 바람에 다시는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했고, 역시 냉전의 틀에 묶여 남한마저 방문해보지 못한 채로 90년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국경 밖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감한 한인은 의외로 많다. 전쟁과 경제난으로 가득찬 격동의 20세기는 많은 동포들을 남미의 농장으로, 시베리아 벌판으로, 때로는 중국 대륙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미개척지를 옥토로 바꾸어놓았고, 멕시코의 농장에서도 신화를 이뤄냈으며, 중국 대륙에서도 고유문화를 지키며 민족의 자존감을 지켜냈다.

문제는 그들의 삶이 제대로 기억되고 정리되지 못하는 데 있다. 변월룡이라는 위대한 화가의 삶도 사후 20여 년이 지나서야 조명 받고 있는 현실이 우리들의 무감각과 무신경을 잘 보여준다. 필자도 하와이의 공동묘지에서 종종 이, 박, 김 같은 한국인 성씨를 발견하고는 가슴이 찡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던 걸까. 자손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나마 성씨라도 남아있으면 다행이다. 부모 중 한쪽이라도, 특히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는 문화권에서는 아버지가 한국인이 아닐 경우 자식세대부터는 이름으로 한국계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민자로서의 삶이 3, 4대로 이어지다 보면 언어는 물론이요 정체성까지도 한국으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다.

한인 이민사회의 리더인 김창원씨의 삶은 우리에게 국경 안이냐 밖이냐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는 1903년 최초의 이민자로 하와이에 발을 내딛었고, 1927년에 한국으로 역이민해 이듬해 그를 낳았다. 1952년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후 아버지가 머물렀던 하와이로 온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기업인으로서 일가를 이뤘다. 여기까지는 그의 삶이 다른 '성공한 이민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하와이대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고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 등 이민자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사업들을 이끌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여러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모국의 발전에까지 기여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가 국경 밖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민족 문화와 공동체에 기여한 바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한국에서 '한국인' 또는 '한민족'은 누구인가를 다시 제대로 정립해보는 작업도 시급하다. 앞으로는 피부색이나 외모와 같은 생물학적 기준보다 우리의 문화를 어느 정도 잘 지켜내고 있느냐라는 정체성의 기준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세계 어느 곳에서든 한민족으로서 지역공동체, 국가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알려야 할 것이다. 더이상 변월룡과 같은 안타까운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세계 어디에서든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면서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족적을 꾸준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장현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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