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상만사] 진보 지향은 살려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상만사] 진보 지향은 살려야

입력
2012.05.23 11:05
0 0

#1. 우연한 착각이 그릇되게 굳어지는 일이 있다. 하루살이의 참모습을 최근에야 알았다. 엉뚱한 곤충을 하루살이로 알고 살아온 반백 년이 허망하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동세대의 평균 이상이라는 평을 들어온 터라 더하다.

착각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아깝다. 몇 년 전 이맘때 신 청평대교 위에 하얗게 쌓였다가 자동차 바퀴에 휘말리는 죽은 하루살이 떼를 보았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하루살이인 줄 몰랐다. 얼마 뒤 TV로 하루살이 의 짝짓기 군무 영상을 보고 그때 다리 위의 그게 저놈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잠깐 동안이었다. 하루살이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이 새 '지식'을 덮은 탓이다.

최근 확인한 '진짜 하루살이'는 어릴 때 고향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1급수 지역이라 반디는 지천으로 보았어도, 2급수 지표종인 하루살이를 볼 수는 없었다. 대신 '하루살이'라는 말은 쇠파리보다 훨씬 작고, 떼지어 눈 앞에 어른거리는 '날파리'를 가리키는 데 썼다. 그런 기억이 너무 강해서 날파리에 비할 수 없이 크고 징그러운 '진짜 하루살이'를 하루살이로 받아 들이지 못했다.

서울 잠실 등 하천 가까운 곳에서 하루살이 떼가 극성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잠실 근처에서 실제 상황을 목격하고서야 오랜 착각을 털어낼 수 있었다. 밤에 편의점 창으로 가득 날아드는 하루살이를 찬찬히 관찰하고도 믿어지지 않아 백과사전과 생물도감을 뒤진 다음의 일이다.

#2. 언제부터인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걸인과 만나면, 원인 모를 어색함과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른다. 돈을 주든, 외면하든 차이가 없다.

이런 본능적 거리낌이나 소스라침에 가까운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명이 가능하다. 이브와 선악과, 뱀을 드는 기독교적 설명, 인간이 땅에 내려서기 전의 나무 위 서식처의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했던 것이 뱀이었다는 과학적 설명이 있다.

걸인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해 고민하다가 겨우 갖게 된 짐작이 '이유 없는 부채 의식'이다. 1970ㆍ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가운데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운동권 한복판, 그 주변부나 바깥 어디에 몸을 두었든, 살아남은 자들은 청춘의 이상을 좇아 세상을 뜨거나 '현장'에 몸을 묻은 동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심정적으로라도 함께 꿈꾸었던 세상이 실현되지 않았고, 그 미(未)실현에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기여'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한 부채의식도 있다. 80년대 말~90년대 초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로 꿈의 내용은 많이 바뀌었어도, '모두가 더불어 인간적 삶을 누리는 세상'에 대한 눈길의 방향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이런 부채의식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시장주의 일탈'을 제어하고, 공생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온 자산이다. 아울러 분단 현실 앞에서도 진보의 싹이 고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토양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지켜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 등 주사파 출신의 주관적 착각이나 말과는 달리 이해타산에 분주했던 행태는 특별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80년대 생성단계에서 이미 시대착오를 드러냈고, 90년대 이후로는 아예 신흥종교 취급을 받았던 세력이다. 광신도 말고도 인지 부조화에 시달리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고, 그 또한 민주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면목이 드러난 마당에 이들이 '국회 프락치'가 되어 나라 근간을 흔들리란 우려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한국사회가 그리 우스울 리 없다.

그보다는 통합진보당 내 주사파의 실체 확인이 사회적 착각을 바로잡는 수준을 넘어 벌써 흐려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모두 지울까 우려된다. 한국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진보적 지향을 살려내기 위해 구당권파에 가능한 것은 퇴진뿐이다. 그들에게 던져진 시대의 '지령'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