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로 마지막이 되겠죠."
같은 팀에 세 번째 입단은 31년 국내 프로야구사에서도 진기록으로 남겨질 것이 분명하다. 테스트를 통해 KIA와 입단 계약만 남겨 놓고 있는 최향남(41)은 23일 전화통화에서 "기회를 주신 선동열 감독님과 구단에 감사하다. 야구를 시작한 광주에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향남의 야구 인생은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 '풍운아'라는 수식어 그 자체였다. 1990년 목포 영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그는 '불펜의 선동열'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97년 LG로 트레이드됐다. 그 와중에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국군 의장대의 사병으로 꼬박 30개월간 군 생활을 하기도 했다. LG에서 최향남은 97년 8승(3패), 98년 12승(12패)를 올리며 에이스로 떠올랐으나 가슴 속에서 꿈틀대던 해외 도전의 꿈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2003년 LG에서 방출된 뒤 해외 문을 두드렸으나 실패하고 2004년 다시 KIA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한 시즌만 마친 뒤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2005년 11월 클리블랜드와 계약했다. 트리플A 버펄로 바이슨스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2.37로 야구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한 최향남은 2007년 주가가 폭등하며 국내 여러 구단의 러브콜 끝에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2008년 '향운장'이라는 별명과 함께 롯데 불펜을 책임지며 4강을 이끌었으나 2009년 또 다시 미국으로 갔다. 2010년 일본 독립리그를 거쳐 2011년 롯데로 다시 돌아왔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7월 또 방출됐다. 함께 방출된 손민한과 함께 9구단 NC 다이노스 입단 테스트 기회를 얻었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에 올해는 2군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최향남은 다시 기약 없는 재도전을 모색했고, 결국 불펜이 무너진 KIA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광주에서 테스트를 받은 뒤 서울로 올라와 잠실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는 최향남은 "토요일(26일)에 광주로 완전히 내려가 정식으로 합류할 예정"이라면서 "내 스스로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면 미련 없이 옷을 벗을 준비가 돼 있다"면서 "지난해 롯데에서는 던져 보지도 못하고 나왔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고 선수 신분으로 계약해야 하는 최향남은 규약에 따라 다음달 1일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하다. '불펜의 선동열'에서'무등산 향운장'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는 KIA도 6월 반격을 꿈꾸고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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