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최지성 부회장과 애플의 팀 쿡 CEO가 드디어 만났다. 양 사는 원래 예전부터 부품 쪽에선 거래관계가 많아 두 사람의 관계가 생면부지는 아니었지만, 특허소송이 시작된 이래 적장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외신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 부회장과 팀 쿡 CEO는 21~22일(현지시간) 미 샌프란시스코 모처에서 비공개 특허협상을 시작했다.
중재를 맡은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조지프 C. 스페로 판사는 당초 두 CEO에게 법정에서 만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양측은 세간에 쏠린 시선을 의식해 협상 장소변경을 요구했고, 스페로 판사가 이를 수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판사가 장소변경요구를 수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이번 특허소송의 민감성을 법원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특허침해 소송으로 맞선 래리 페이지 구글 CEO와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의 경우, 법원 중재로 마련된 지정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회동은 소송 담당판사인 루시 고(한국명 고해란) 판사가 지난 달 양 사 CEO와 법률책임자에게 직접 만나 48시간 협상을 하도록 명령하면서 이뤄졌다.
일단 양측은 첫날 회동에서 팽팽한 신경전 속에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협상을 명령한 것은 양측이 판결까지 기다리지 말고 합의하라는 뜻이지만, 두 CEO는 상대방의 특허침해사실을 적시하며 중재안은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결국은 특허로열티를 내고 크로스라이선스(상호특허공유) 계약을 맺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도 애플과 협상을 위해 출국하기 전 "애플과 협상방안으로 크로스라이선스를 포함한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동에서 곧바로 타협점이 찾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로선 양 사 모두 핵심기기인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 상대방이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애플의 경우, 삼성전자와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 와중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법원에 삼성전자 갤럭시탭 10.1 제품에 대한 판매중단 명령을 요청할 만큼 여전히 강경 모드다. 삼성전자 역시, 협상과 소송은 별개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협상 테이블 자체가 자의가 아닌 타의(법원 명령)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도 양 측의 대 타협 가능성을 낮게 보는 배경이다. 타협점을 찾기 보다는 법원 명령을 어길 경우, 향후 본안 소송 과정에서 받게 될 지도 모를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서다.
미국 지적재산권 전문기업인 울프 그린필드 &삭스의 스티븐 헨리 변호사는 "양 사의 특허 소송전이 21~22일 사이에 끝날 것으로 기대하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이번 만남은 판사가 양 측에 비즈니스적 판단을 가미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양 측은 서로 더 거센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초강경 대결 일변도로 흘렀던 이번 특허전쟁은 이번 회동을 통해 화전(和戰)병행의 국면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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