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도정일 칼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도정일 칼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입력
2012.05.22 12:11
0 0

우리 사회의 다음 시대를 끌어갈 젊은 세대 성원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대학에 들어오고 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자기형성' 작업을 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는가'가 자기형성 작업의 골자다. 옛날 동양 사람들이 '수신'이라 부른 것, 독일 사람들이 '빌둥'이라 명명한 것, 영국인들이 '마음기르기'라고 칭한 것이 모두 내가 나를 만드는 일, 곧 자기형성 작업이다. '나'를 만들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성장은 '아픈' 사건이다. 거기에는 마치 면제되지 않는 세금처럼 고뇌와 번민의 시간이 요구되고 방황과 상실의 경험들도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일은 교육이라는 사업에 안겨지는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고 목표다. 시대가 제 아무리 바뀌고 문명의 문법이 제 아무리 요동쳐도 교육의 그 근본 과제와 본질적 목표는 바뀌지 않고 바뀔 수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거의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문제, 곧 교육의 항구하고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즐거운 망각이라는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 남짓한 세월 사이에 우리 사회를 휘어잡은 것은 '새로운 시대'라는 이데올로기다. 새로운 시대라는 표현 자체는 이데올로기라 말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자,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뀐 시대다, 기술도 바뀌고 산업도 바뀐 시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인간도, 가치도,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명령처럼 사람들을 사로잡을 때다. 물론 지금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 산업, 직종들이 다수 등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말할 때마다 우리가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변화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과 감각이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을 지닌 사람만이 변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교육에서 그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능력'이 치명적으로 약화된 인간을 길러내는 데 동조할 수 없다. '판단력'의 현저한 결손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는 데 동조할 수 없다. '집중력'이 휘발해버린 인간을 길러내는 데 동조할 수 없다. '교감의 능력과 공감의 상상력'이 동결된 인간을 길러내는 데 동조할 수 없다. 사고력, 판단력, 집중력, 상상력, 이 네 가지는 시대 변화에 관계없이 교육이 성장세대에게 반드시 길러주고 함양해야 하는, 이른바 '교육받은 인간'의 기본 능력이다. 그것들은 교육의 변수가 아니라 교육의 항수다. 그 능력들은 모든 창의성, 선도성, 유연성의 원천이고 모태이다. 변화에 대응하고 변화를 유도하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도 거기서 길러진다.

이런 관찰에 연결지어 말하면, 지금 대학들은 교육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농담' 같은 현상들 앞에서 심사가 불편하다. 이른바 '신세대' 구성원인 대학생들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치명적 결손들이 교육의 위기를 고지하고도 남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독서력의 결핍은 대표적인 경우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학교육에 들이닥친 일대 위기에 관한 것이다. 이 위기의 책임은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거쳐온 중등교육의 방식, 그들의 삶과 문화를 지배하는 지금의 디지털 매체환경, 그들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수많은 시각적 유혹들, 신세대의 정체성 형성을 오도하는 시장의 위력,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성장세대에게 치명적인 지적, 정서적 능력 결손을 초래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져서 교육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