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후 사용하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이달 안에 일반약 전환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료계와 소비자단체, 종교계 등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는 응급피임약은 전문약이다. 복지부가 일반약으로 재분류할 경우 처방전 없이 누구나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복지부는 일반약 전환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40여개국처럼 응급피임약이 일반약으로 분류되면 매년 2,000~3,000명에 달하는 미혼모 발생이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부 논의는 끝났다"고 말해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여부 발표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정부 발표를 앞두고 찬반 논란도 한층 가열되고 있다. 약물의 부작용과 생명경시 풍조, 무책임한 성관계 조장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반면 성폭행 등 사고에 의한 원치 않는 임신을 막고 낙태 시술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은 "응급피임약을 병원에서만 파는 바람에 휴일과 연휴에는 구매가 어려워 '응급'이라는 기본 속성을 방해하고 있는 만큼 일반약으로 전환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다른 입장이다. 이 교수는 "응급피임약은 일반피임약 10~15알을 한꺼번에 먹는 것과 같은 고용량의 호르몬으로, 반복해서 복용하면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반대
"고용량 호르몬 함유 출혈·복통 등 위험 커… 피임 실패율 15%… 편리함 강조 안될 말"
지난해 6월 녹색소비자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의약품 재분류를 신청했다.
일반약 전환을 희망하는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은 성관계 후 빨리 약을 먹어야 하는데 처방받으러 가는데 시간이 걸려 문제가 되니 그냥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약국이라고 24시간 문을 여는가. 대개 밤 9시까지, 주말에는 당번 약국만이 열려있는 약국보다는 오히려 병원 접근성이 훨씬 높다. 그렇게 응급으로 빨리 피임약을 먹어야 한다면 응급실에 가면 되고 실제로 응급실에서 응급피임약을 처방 받는 경우 원내 약국에서 즉시 구입, 복용이 가능하다.
응급피임약은 부작용이 경미해 일반약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맞지 않는다. 응급피임약에는 황체호르몬인 레보놀게스트렐이 1정에 1.5mg 함유돼 있다. 이 레보놀게스트렐은 일반 피임약인 미니보라 1정과 쎄스콘 1정에는 0.15mg, 에이리스 1정에는 0.1mg이 함유돼 있다. 즉, 응급피임약은 일반 피임약 10~15알을 한꺼번에 먹는 것과 같다. 고용량의 호르몬이기 때문에 한 월경주기에 며칠 간격으로 반복해서 여러 번 사용할 경우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 응급피임약 복용 후 2시간 이내에 구토를 하게 될 경우 약효를 기대할 수가 없는데도 응급피임약을 복용했다고 안심하고 지나다가 뒤늦게 임신이 발견돼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궁외임신을 예방하지 못하므로 응급수술을 해 나팔관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논문에서 보면 응급피임약 부작용으로는 출혈이 가장 많아 3분의 1 가량이 출혈을 호소한다. 많은 여성이 이를 '생리'로 오인하고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안심하다가 뒤늦게 임신을 발견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응급피임약은 정상 용량 범위 안에서 사용하더라도 출혈(31%), 오심, 복통 등의 부작용 발현의 빈도가 높은 의약품이다. 임신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의 발현빈도가 높은(피임실패율 15%) 의약품이므로 전문의약품이어야 한다.
특히 응급피임약 복용에 대한 피임 상담은 여성의 매우 사적인 문제에 대한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출된 공간인 약국이 아니라 의사와 1대 1 상담이 가능한 병원이 적합하다. 응급피임약 처방 시 성생활 시기, 배란일 여부, 임신상태는 아닌지 등을 물어보고 응급피임법사용이 적합한지, 환자에 대한 선별과 이에 따른 진료가 필요하며, 약의 부작용, 주의사항, 응급 시 대처방법 등의 지도가 필요하다. 모두에게 노출된 공간인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상담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통계상 피임 실천률이 80%로 높다. 그러나 낙태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다.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피임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피임효과가 확실한 일반 먹는 피임약 복용률이 유럽에서는 3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약 2%에 불과하다. 올해 현재 먹는 피임약 복용률은 2.8%인데 반해 응급피임약의 복용률은 그 두 배나 되는 5.6%에 이르고 있다. 또 학교 성교육의 이해도와 만족도가 12%로 매우 낮아 어린 나이에서부터 실질적인 성교육 및 피임교육이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나라의 사전 피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계획 임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성노출이 증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이 일반약으로 전환될 경우 오히려 올바른 피임 문화를 정착시켜 불법낙태를 근절하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응급피임약 복용은 여성의 건강과 미래에 직결되는 문제다. '접근성'과 '편리성'만을 강조하며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다. 피임약의 복용률이 외국 만큼 높아지고 피임 및 성에 대한 인식이 정착된 후에 논의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
■ 찬성
"의약품 부작용·오남용은 모든 약에 상존… 원치않는 임신, 여성의 두려움 헤아려야"
상상해보자. 여성들은 언제, 어떻게, 왜 사후응급피임약을 복용할까. 포털 사이트에 '사후응급피임약'을 검색해봤다. "사후 피임약 부작용, 응급피임약 구토, 하복부 통증, 피로 등 부작용 발생, 응급피임약 복용 이후 생리를 하지 않아요…", "사후피임약은 일반적인 피임약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호르몬제에 비해 최고 10배에 가까운 양의 호르몬을 투입하기 때문에 응급 시에만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등등.
사후피임약 복용 이후의 부작용 호소와 절대 응급시에만 복용해야 한다는 부작용 고지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런 부작용을 예상하면서까지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신을 막기 위해서다. 임신을 왜 막을까.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할 수도 있는데 왜 피임을 안 했을까.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대체 왜 피임하기 어려울까.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는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바 있다. 피임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대체적으로 남성이 원하지 않아서", "제안하면 '좀 밝히나?' 이런 생각할까봐", "피임법을 몰라서" 등이라고 답했다. 이 내용들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둘러싼 피임 실천 과정에서의 여성의 어려움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쾌락과 욕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성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피임 정보를 얻기 어렵다. 더 넓게는 이런 태도 때문에 학교와 사회 조직에서 성에 관한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지 못하기도 한다.
일부 종교계는 '응급피임약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치기도 하고, 응급피임약 복용은 결국 낙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여성을 비난하기도 한다. 왠지 피임을 준비해도 욕하고, 준비하지 않아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이중적 성문화와 닮아 있다. 두 입장 모두, 보호와 비난 사이에서 여성이 성적 존재가 되는 것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것 같다.
사후응급피임약이 약국 시판된다면 성관계가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을 알 수 있는데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다고, "와 이제 섹스를 하자. 응급피임약이 약국에서 파니까 오늘 만나!"라고 환호할 것이라고? 성관계가 많아진다는 상상력도 참 저열하지만 실제 성관계가 많아져서 문제될 건 뭐 있나. 낙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사후피임약의 접근성이 높아져야 원치 않는 임신이 줄어들지 않겠나. 오남용, 부작용이 많아질 거라고? 오남용의 문제는 의약품 자체가 내재하는 속성이다. 어떤 의약품이든 판매와 오남용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여성들에게 직접 끼칠 부작용 등 건강 차원의 문제나 남성의 피임 전가로 오남용하지 않을 수 있는지, 정부 차원의 홍보와 교육을 고민하고 지원하라는 것이다. 서구 사례처럼 판매량이 몇 십 배 증가할 것이다? 당연하다. 병원 판매로 그동안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반증이다. 판매 초기에 접근성이 높아졌는데 구매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그동안 응급피임약을 병원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휴일, 연휴에는 구매가 어려워 '응급'이라는 약의 기본 속성을 방해했으니 접근성을 높이는 게 맞지 않은가. 어차피 병원 처방 받는다고 따로 검사를 한다거나 부작용을 설명해준다거나 진찰해주지 않는다. 수치심이나 심정적 거리감 때문에 병원 방문을 주저하는 여성들의 정서적 접근성을, 약의 실효성을 높이라는 주장에 왜 이리 반대 논리가 거창한가. 성문란? 생명경시? 성도덕 추락? 이런 격정적인 주장 속에는 빠진 이야기가 있다. 정작 이 약을 복용해야 할 여성들의 목소리다. 실제 여성들이 언제 어떻게 왜 사후응급피임약을 복용하게 되는지 말이다. 누가 두려움에 떨면서 임신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부작용을 감내하면서 복용하고 싶겠나. 결국 약의 접근성을 높여 불가피한 사후응급피임약 복용 현실을 외면하지 말되, 피임 실천 과정에서의 여러 장애물을 파악하고 없애가자는 것이다.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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