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에 온라인 청구서 몇 장이 깜빡깜빡 도착해 있음을 알렸건만 애써 외면하는 며칠이었다. 봄이다 연휴다 먹자 마시자 집에 가자, 해서 밥집이니 술집이니 택시비니 상점마다 북북 굵어댔던 카드 값이 그제야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단 클릭을 하고 들어갔더니 역시나, 내역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며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마지막 한 줄 그 합계에 이르자 수궁이 되더니만 절로 터지는 한숨. 그때부터 여지없이 시작되는 자책의 연속. 일찍 결혼했으면 애가 고등학생일 텐데 이렇게 살림 살다가는 집안 말아먹었을 거라는 둥, 차라리 쇼핑벽이면 택배 박스라도 내다 팔았으련만 먹고 싼 기억 말고 남은 게 뭐냐는 둥, 그러한들 솔직히 얻어먹는 술보다 사주는 술에 더 배부른 걸 어쩌랴.
거나하게 취한 날마다 동네 앞 슈퍼에서 내다 놓은 빨간 파라솔의 철제 테이블,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 어른 저 어른 죄다 불러 세우던 아빠가 있었다. 그러고는 맥주 한 짝을 시키고 그 안에 든 모든 맥주를 꺼내더니 뻥뻥뻥, 일단 뚜껑부터 다 따두던 술 취미라니.
이 술 다 마시기 전에 아무도 집에 못 가, 나 죽으면 나 밟고 가든가. 술 대신 콜라 마시는 아빠였다면 부자는 됐을지언정 이런 뭉클함이 있었을라고. 아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계란 열 개 삶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오셨던 동네 폐휴지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 완전 낫이구나 그려 보이던 나였는데 말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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