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에서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최대 85만명이 숨지고 628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환경운동연합과 일본 간세이가쿠인(關西學院)대 박승준 교수 등이 진행한 실험은 일본의 원전사고 프로그램을 국내에 적용한 첫 사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원전에서 전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원전은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는 원자로형이 전혀 다르고 격납 건물이 훨씬 견고해 모의실험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재앙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다소 과장된 실험결과라 해도 허투루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원전안전 신화가 붕괴된 마당에 언제든지 끔찍한 재앙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실험이 더 주목 받는 이유는 그 대상이 고리 1호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30년 설계수명을 다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2007년 폐쇄했어야 하는데 수명을 10년 연장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고리 1호기는 지난 2월 외부전원 공급장치인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는 중대사고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국내 원전가동 이후 집계된 원전사고 655건 중 고리 1호기에서만 129건이 발생했다. 원전 21기 가운데 고리 1호기에 전체 사고의 20%가 집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모의실험 결과를 과장으로만 몰아 부칠 수는 없다.
내달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들이 방한해 고리 1호기 특별점검에 나선다. 고리원전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IAEA가 원전 폐쇄 권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원전옹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며 재가동을 위한 면죄부 주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당국은 한치의 오해도 생기지 않도록 특별점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이번 모의실험 결과를 참고해 안전 종합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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