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9년차 뮤지컬 배우 서범석(42)은 인터뷰 내내 대본을 펼쳐 놓고 있었다. 어떤 질문을 하든 자주 극 중 대사를 인용해 대답했다. 그는 6월 22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 돈키호테를 연기한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미 구두로 출연을 약속했던 다른 모든 작품을 포기했을 만큼 수년 전부터 꿈에 그리던 역할"이라고 배역을 소개한 그는 "그래서 겁도 난다"고 했다.
"저는 배우의 꿈을 꾸는 사람이지, 아직도 스스로를 감히 배우라고 말 못해요. 배우라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제 처지와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겠다'는 돈키호테의 노래가 딱 맞아떨어지는 점 때문에라도 꼭 맡고 싶었죠."
2005년 김성기, 류정한이 함께 주인공을 맡아 초연한 '맨 오브 라만차'는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가 죄수들과 극중극을 연출하는 형식으로 고전 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2007, 2008, 2010년 재공연에는 조승우, 정성화 등 스타들이 거쳐 갔다. 이번 무대 역시 영화배우로 더 유명한 황정민과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닥터 지바고' 등 대작 주인공을 잇달아 맡았던 홍광호가 그와 번갈아 무대에 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의 섭외 영순위 조승우, 정성화, 류정한이 다행히도 지금 너무 바빠요.(웃음) 일생일대의 기회가 운명처럼 왔으니 우직하게 인물을 잘 만들어 봐야죠."
1994년 뮤지컬 '번데기'로 데뷔한 서범석은 '미스터 마우스' '블루사이공' '파이란'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했지만, 최근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남한산성' '모차르트!'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역을 주로 맡았다. 그 때문인지 2010년 '맨 오브 라만차' 공연 때는 조역인 여관 주인 역할을 제안 받았다.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에서 전화 받고 뛸 듯이 기뻤는데 배역 설명을 듣고는 좀 속상했죠. 영화계는 관객이 배우보다 작품을 선택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는데 뮤지컬계는 아직 과도기여서 배우의 티켓 파워가 캐스팅에 영향을 많이 미치니까 이해는 하지만."
'꿈의 배역'을 맡았다는 것 말고도 그가 베테랑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달라진 뮤지컬계 환경이다. 그는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첫 공연의 중요성이 부쩍 커졌다고 믿는다. "공연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아져 폐막으로 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요즘은 첫 공연부터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최근 그는 TV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넌 내게 반했어'의 주인공 이신(정용화)의 아버지, '꽃미남 라면가게'의 차성그룹 차회장(주현) 비서 고이사 등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모든 것에 능한 배우가 되고 싶어 뮤지컬을 선택한 것일 뿐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궁극의 꿈"이라며 드라마에도 꾸준히 출연할 뜻을 밝혔다.
"인간 서범석이 인기를 얻고 못 얻고는 관심이 없어요. 배우는 배역이 말해주는 거니까, 그저 관객이 어떻게 하면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입장을 공감하게 할까, 요즘은 그 생각뿐이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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