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 경기 이천시 율면의 한 농촌. 4,000㎡ 면적의 밭을 가득 채운 고구마 모종들이 곧 죽을 것처럼 하나같이 축 처져 있었다. 하지만 모종 상태를 보러 온 장호철(49ㆍ가명)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이렇지만 앞으로 잘 자랄 겁니다. 원래 이런 종자거든요.”
장씨와 함께 나온 김성현(38ㆍ여ㆍ가명)씨와 강영애(46ㆍ여)씨, 고영숙(37ㆍ여)씨 등은 이 말을 듣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이 밭이 우리 법인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제 시작이죠.”
이들은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했지만 네 명 모두가 탈북자들이다. 저마다 대한민국에서 힘겨운 삶을 헤쳐온 이들이 최근 천지영농조합법인이란 이름으로 한데 뭉쳤다. 천지는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설립한 첫 번째 영농법인이다.
탈북자 영농법인 설립은 대표를 맡은 김씨의 오랜 바람이었다. 9년 전 탈북한 김씨는 인천에서 피부관리숍 등을 운영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틈틈이 학원에 다니며 부동산에 대해 공부했다.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탈북자들과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지난해 율면에 영농법인을 세울 땅 1,800㎡를 매입했다. 노는 땅이 많아 주변 농지 약 16만㎡도 손쉽게 임차했다. 김씨는 “브로커한테 탈북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은 몸뿐이라 남자는 막노동을 하고, 여자는 유흥업소에 나가게 된다”며 “농사 경험이 풍부한 탈북자들이 농업을 통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출신이 다르고 탈북 시기도 제 각각인 이들이 하나 둘 김씨 옆에 모여들었다. 북한에서 농업에 종사한 장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약속시간에 맞추지 못해 북에 두고 온 아들(15) 걱정으로 속이 타 들어가도 장씨는 먹고 살기 위해서 지난 2년간 공사판을 전전했다. 농촌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임대아파트는 도시에만 있는데다 가진 돈이 없고, 땅도 없는 그가 할 일은 막노동 일뿐이었다.
함북 온성에서 5년 전 탈북한 강씨는 요양병원에서, 원산이 고향인 고씨는 2년 넘게 식당에서 일하며 북에서 데리고 온 자녀들의 생계를 챙겼다. 강씨는 “탈북자들에게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는 “남한에서 처음으로 희망이 생겼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각계의 도움으로 출발은 순조로운 편이다. 약 2개월 만에 저온저장고 세척장 숙소 등을 건축하기 위한 인ㆍ허가를 마쳤고, 이제 착공을 앞두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경기도와 이천시가 2억7,200만원의 사업비 중 60%를 영농지원금으로 보태준 게 큰 힘이 됐다. 이천경찰서 보안협력위원회는 무료 건축설계를 연계해줬고, 이천경실련도 전문가를 소개하는 등 앞장서 도왔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도 영농자금 2,000만원을 지원했다. 율면농협은 영농에 유리하도록 기꺼이 김 대표를 농협조합원으로 받아줬다.
천지 조합원들은 올해 수익성이 높은 고구마와 콩 재배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 작물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 내년에는 더 많은 탈북자들에게 영농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여건이 안돼 농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희망은 이미 보았다. 고구마 모종을 심을 때 공지를 한 것도 아닌데 서울 인천 수원 등에서 15명이 나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알음알음 찾아 온 것이다. 당시 한 60대 탈북자의 말은 김씨의 가슴을 때렸다. “굳이 여기까지 왜 오셨냐?”는 물음에 그는 “아직도 북에 있는 아들 딸에게 돈 보내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씨는 “제대로 일할 곳이 없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현실”이라며 “그들이 언제든 와서 일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이천=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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