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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만국박람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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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만국박람회의 기억

입력
2012.05.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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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 전까지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는 근본적이고 독립적이며 절대적인 실체였다. 인류가 시간과 공간이 틀 지운 생존 조건의 원초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대항해시대'를 전후한 때부터였다. 특히 원동기의 발명은 인간과 가축의 생리적 한계 안에 갇혀 있던 속도를 '해방'시켰고, 그와 더불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간의 관념도 근본적으로 변했다. 인간의 의식 안에서 시간과 공간은 연장, 단축, 확산, 절약할 수 있는 것, 즉 관리할 수 있는 상대적 실체가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는 시간과 공간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폭발적으로 고양된 시대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국가권력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장악하여 미래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려 했고, 지구 전역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얻은 물리적, 지적 노획품들을 자기 영토 안에 집적하려 했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자국민들을 역사 속에서 통합하고, 그들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팽창과 정복에 대한 열정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런 의지가 국립 박물관과 만국박람회의 시대를 열었다.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1759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것은 1851년이었다. 박물관은 시간을 압축해 두는 곳이고, 박람회는 공간을 축소해 보여주는 행사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각각 정지된 시간을 체현(體現)한 채 서로 어울려 기나긴 역사를 즉물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여행의 공간인 박물관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한편 만국박람회 관람객들은 좁은 공간에서 동시대 세계 문명의 정수를 체험한다. 그들은 세계 문명을 선악, 우열, 미추 등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자기 나라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했다. 이렇게 국립박물관과 만국박람회는 시간과 공간, 역사와 지리, 민족과 세계의 관계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근대 국민, 특히 '경쟁하는 국민'을 만드는 기계로 작동했다.

박물관은 제국이 아니어도 만들 수 있었으나, 만국박람회는 제국이 아니고서는 개최할 수 없었다. 만국박람회는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27차례 개최되었는데, 유럽과 미국 이외의 지역에는 단 한 차례의 기회도 돌아가지 않았다. 만국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영토 안에 세계를 끌어들일 힘과 자격을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는 일이었다. 제국의 대열에 끼지 못한 나라들은, 그에 참여하여 자기 나라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공식 참여한 첫 번째 만국박람회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였다. 당시 조선관은 8칸짜리 한옥 와가(瓦家)였으며, 그 안에 가마, 찬장, 식기, 신발, 화로, 자수병풍, 관복, 악기 등을 전시했다. 정부에서는 국악 공연을 위해 악공들도 파견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900년 파리 박람회에는 근정전을 본 뜬 한국관을 짓고 의복, 갓, 도자기, 자수병풍, 활, 종이, 붓, 참빗, 서책 등을 전시했다. 당시 프랑스의 한 언론은 대한제국의 박람회 참가를 두고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마침내 진보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논평했다.

1902년은 고종 즉위 40년이 되던 해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기념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 행사를 치르기로 하고 '칭경예식' 준비에 착수했다. 행사계획 중에는 박람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콜레라 유행과 국제 정세의 급변으로 칭경예식은 거행되지 못했고 박람회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그 얼마 뒤 주권과 함께 만국박람회장에 태극기를 걸어둘 기회도 잃었다. 만국박람회에 한국의 '존재' 조차 알릴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난주 여수 엑스포에 다녀왔다. '지구촌 시대'라지만, 아직 박람회를 '국력 과시장'으로 생각하는 유풍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듯했다. 관람객들 역시 전시관의 내실보다는 '국호'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가난한' 나라들의 썰렁한 전시관들을 둘러보면서, 100여 년 전 시카고와 파리의 한국관이 연상됐다. 젊은 사람이라도 이 땅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구경할 기회는 평생에 몇 번 더 없을 터이다. 그러니 가급적 가서 보자. 그리고 옛날 우리 일을 생각해서 가난한 나라의 전시관도 찬찬히, 성의 있게 둘러보자. 이미 익히 아는 나라의 문화에서보다는, 잘 모르는 나라의 문화에서 배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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