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사운드(Sound)와 랜드스케이프(Landscape)의 합성어로 보통 '음환경'이라고 번역한다. 다른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소리에 둘러싸여 산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가 내는 마찰음, 회전문이 밀리는 소리, 지하철의 굉음 같은 소음이나 각종 안내 방송, 경고음 같은 인위적인 소리, 그리고 공원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잘 디자인 된 음악소리 같은 수많은 음환경 속에 살고 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이런 소리들을 분석해서 좀 더 좋은 음환경을 이루려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을 없앨 수 없다면 그와 상응하는 음을 만들어 그것을 조화롭게 할 수는 없을까. 지하철이 내는 굉음을 다른 음과 섞어 소음이 아닌 음악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건축공사 현장에서 나는 망치 소리, 장비가 내는 소리들을 좀 더 유쾌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음파와 음파를 상쇄시켜 소음을 없애는 방법도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광범위한 음환경을 다루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국내외 저서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비교적 최근의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음악에서도 소음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소음은 고대로부터 음악의 중요한 요소였고, 심지어는 음악 자체였다. 한자에서 음(音)과 성(聲)은 각각 질서를 가진 소리와 질서를 가지지 않는 소리를 나타낸다. 질서를 가진 소리는 물론 음악이다. 문제는 질서를 가지지 않는 소리다. 당시의 음환경으로 보면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들이 여기에 포함되었고, 아마도 마차 바퀴 소리나 대장간의 망치 소리 같은 것은 제외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가에서는 음과 성을 분리한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음과 성의 구별이 없다.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과 윤리와 도덕을 바람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유가의 입장에서 음은 성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음이나 성이나 거기에는 어떤 감정의 개입이나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했다. 사운드스케이프 역시 질서를 가지는 소리에서 보다 넓게 소리 전역에 걸쳐있다. 그리고 조선 집은 소리를 중요한 집의 구성원리로 삼았다. 바깥을 경영하면서 집의 풍수와 지리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들리는 소리까지도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집의 뒤란에 흔하게 펼쳐져 있는 대숲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는 그 대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집에서 듣는다. 옛사람들은 대나무 잎사귀들이 서로 몸부비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꼈고, 소낙기의 전주를 들었고, 눈이 오는 날의 고요를 오히려 소리로 들었다. 작은 연못 속에 도가적 이상향을 구현하고, 거기서 들려오는 온갖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일부러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의 낙차를 만들고, 흘러가는 물의 흐름을 오래 오래 돌린 것도 같은 이유다. 풍경을 매달아 그 소리를 즐기는 것도, 항상 맑은 정신을 이루려는 의도였다. 조선 집은 음악이 아닌 소리로 사운드를 디자인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방안에 공명하게 하는 것은 창호지의 역할이었다. 조선집의 창호지 문은 관현악기의 떨림판과 같은 구실을 하며 바깥의 소리를 실어왔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거문고를 사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방안에서 울리는 악기의 음과 방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절묘한 배음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비로서 도가와 유가의 음악론은 음성이화(音聲而和: 음악과 소리가 화합한다.)의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음악과 소음이 서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이다.
거문고 소리가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와 어울리고, 연못의 물소리와 같이 응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가와 도가가 도달하려고 했던 음악의 경지였다. 소리를 경영하여 느낌을 끌어내어, 질서를 세우고, 음악으로 완성하는 조선 유가의 정신이 조선집에서는 그대로 살아있다. 장대한 사운드 아트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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