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오토바이들이 토해내는 요란한 굉음에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어보니 장관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호찌민 등 대도시는 물론 낙후한 시골 캄보디아 접경 지역에서도 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인구 약 8,600만명, 1인당 국민소득 1,200달러(2010년 기준)의 '오토바이 천국' 베트남. 최근 베트남 기자협회 초청을 받아 방문한 베트남은 '리틀 차이나'로 불릴 만큼 전국이 개발 열기로 뜨거웠다. 북부 공단 지역과 남부 곡창지대(메콩 델타), 캄보디아 접경지역 등 방문지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가 드높던 1970년대의 한국을 연상케 했다. 2020년까지 공업화ㆍ현대화를 이뤄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계획에 발맞춰 지방 정부들도 외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 증가하는데 그쳤고, 소비자 물가는 무려 15.95%나 뜀박질했다. 호찌민 청년신문이 발행하는 영자지 비엣위크의 편집장 팜 테 빈 씨는 "외자 유치와 수출 주도의 베트남 경제는 2000년대 들어 7% 이상 고속성장을 해왔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유럽 재정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며 "지난해 한때 20%가 넘던 인플레가 현재 10%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고, 실질 실업률도 15~2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원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보였다. 2010년 124억 달러에 이어 지난해 9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 베트남 정부의 거시경제 운용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적자를 내다 보니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가뜩이나 오른 물가를 더 자극해 악순환에 빠지는 양상이었다. 이를 타개하려면 수출이 늘어야 하는데, 섬유 신발 등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제조업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1차 생산품(원유 수산물 쌀 등)이 최대 외화 획득원이었다.
여기에 국영기업의 방만과 부실, 비효율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민영화 대신 기업집단화가 이뤄져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정부가 운영하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당장 이 같은 무역적자 구조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부품과 소재 등 수입 대체 산업을 키우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정석이지만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자본과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경공업 부문을 강화하고 중화학ㆍ첨단 부문으로 가야 하겠지만 싸구려부터 첨단 제품까지 모두 만들어 내는'세계의 공장'중국이라는 벽에 막혀 있다. 이런 중국과 경쟁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교 우위 분야와 영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찌민의 한 신문사 간부는 "베트남은 지금 지속 성장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지난 해부터 공기업과 은행 구조조정 가속화, 광범위한 경쟁 시스템 도입, 수출 고부가가치 품목 발굴 등 경제구조를 뜯어고치는 제2의 도이머이(刷新ㆍ쇄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경제만 개혁하자는 견해와, 정치도 함께 고쳐야 장기 처방이 된다는 주장이 맞서 있지만 예민한 주제여서 아직 공개적으로 거론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잠재력을 살리려면 1986년 도이머이 이후 20여년 간 성장한 자본주의 몸통과 기존 사회주의 겉옷 사이의 부조화를 털어내는 제2의 도이머이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어쩌면 베트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지난 50년간 유효성을 입증해온 박정희식 발전 모델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성장과 복지를 아우르는 새 패러다임을 짜야 하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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