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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제는 '돈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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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제는 '돈의 맛'이다

입력
2012.05.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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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는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만큼 불교문화가 민초들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영향을 끼쳐 왔다는 얘기이지만, '중이 고기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처럼 승려를 낮잡아 비유한 속담이 유독 많은 건 조선조 억불(抑佛)정책의 영향으로 지적된다.

불교에서 유래한 관용어들에도 그런 연유로 부정적 의미로 변용된 말들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이판사판' '야단법석'이다. 참선수행을 하는 이판승과 절집 살림을 도맡은 사판승을 묶어 일컫던 이판사판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으로, 야외 법회를 뜻하던 야단법석은 '떠들썩하고 부산스러운 모습'으로 쓰이고 있다.

정책선거는커녕 비방전만 난무했던 4ㆍ11 총선, 낯뜨거운 막말이 오가는 재벌가의 재산 다툼 소송, 진보란 말을 욕보이며 막장으로 치닫는 통합진보당 사태…. 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이판사판, 야단법석의 형국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감인 이 말들이 요즘 제 난 곳인 절집까지 찾아 들어 휘젓고 있다.

가사장삼 걸친 이들의 비행이야 그간 숱하게 봐 온 바, 밤샘 도박 자체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양사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 다툼 과정에서 우연찮게 승려들의 도박ㆍ음주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찍혀 만천하에 공개됐고, 이 사건 고발인인 성호 스님이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겨냥해 '룸살롱 성매수' 의혹까지 제기해 큰 충격을 던졌다. 총무원 측도 성호 스님의 비행을 낱낱이 공개하며 맞불을 놓았다.

어느 쪽 할 것 없이 속세를 향한 이판사판식 폭로와 고소·고발에 나선 것은 이 야단법석의 뿌리가 종단 내에서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곪아 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총무원장이 원로회의와 중앙종회 의장 스님들과 뜻을 모아 18일 '승가공동체쇄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수습에 나섰지만, 일부 원로스님들을 비롯해 종단 한편에서 "심각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미봉책이라는 질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불교계, 특히 조계종 내 이판사판, 야단법석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둘러싼 갈등은 폭력배까지 동원된 최악의 분규로 번졌고, 이어진 대대적 종단개혁운동의 결실은 4년 뒤 다시 불거진 폭력적 종권(宗權)다툼으로 물거품이 돼 버렸다. 이후에도 양대 분규와 같은 아수라장까지는 아니어도 물리력이 동원된 사찰 주도권 다툼이나 돈 선거 파문, 횡령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져 왔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갈등과 분규의 뿌리가 속세와 다를 바 없이 권력, 더 깊숙이는 돈 문제에 닿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도들이 주머닛돈 털어 불전에 바친 시줏돈을 힘 있는 승려들이 제 쌈짓돈마냥 만질 수 있는 구조, 요즘 극장가 화제작인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돈의 맛'에 휘둘리는 구조가 문제다. 사단이 벌어질 때마다 쇄신방안으로 '사찰재정의 투명화'가 약방의 감초처럼 되풀이 언급되는 현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불교계가 '돈'과 '권력'이라는 두 바퀴의 수레를 타고 위태로운 질주를 하고 있다." 불교계 환경운동의 상징인 수경 스님(전 화계사 주지)은 2007년 봄호에 '조계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천하가 다 아는 비밀을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는 것이 우습다"면서 총무원의 권력화, 종회 계파의 권력다툼, 재정 불투명, 승려의 세속화, 사찰의 기업화, 세상과의 소통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범종단 자정기구 발족 등을 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 후 종단 내 자정과 쇄신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쓰는 행위도 어릿광대짓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수경 스님의 개탄처럼, 조계종은 여전히 자정과 쇄신이란 말만 공염불처럼 되뇌고 있다. 이번 사태가 어찌어찌 수습되더라도, 또 몇 년 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지금과 같은 야단법석을 다시 겪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희정 문화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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