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70)씨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를 수사하면서 건평씨 관련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됐다고 밝힘에 따라 실제 돈 주인과 입금 경위 등 돈의 실체를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일 "(뭉칫돈의) 진짜 계좌 주인을 밝히는 데 열흘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해, 돈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 이준명 창원지검 차장검사도 지난 18일 뭉칫돈에 대해 처음으로 말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아주 나쁜 쪽으로 이용한 세력들이 있다"며 이번 수사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뭉칫돈의 실제 주인이 견평씨인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검찰이 뭉칫돈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건평씨 관련 계좌'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도 검찰의 개략적인 수사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검찰은 건평씨가 2005년 7월 고향 후배 이모씨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인 전기안전기기 제조업체 K사 계좌를 통해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의혹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K사 이사로 등재된 A씨 관련 계좌에서 1억원의 증자 대금이 K사 계좌로 흘러들어온 점을 포착하고 거래 내역을 추적하면서 문제의 뭉칫돈을 발견했다. 이 뭉칫돈의 명목상 주인이 K사 대표나 이사 명의로 확인될 경우 실제 주인은 K사의 실소유주인 건평씨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건평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받은 돈을 K사나 A씨 등의 계좌를 통해 관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뭉칫돈의 실제 주인이 건평씨가 아니라 A씨 또는 그 주변인물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중학교 후배로 건평씨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A씨는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사업을 확장해 연간 150억~2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 실명이 거론되며 계좌 당사자로 지목되자 A씨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내가 건평씨의 자금관리인이라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다. 건평씨와는 단돈 100만원도 거래한 적이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그는 "회사 계좌로는 매일 수천만원씩 수시로 거래가 이뤄진다"며 "2008년 세무조사 이후로는 새 계좌를 통해 같은 방법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종착점은 명의자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진짜 주인을 밝혀내는 데 있기 때문에 여전히 건평씨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 건평씨가 관리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 노 전 대통령과 연관된 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검찰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뭉칫돈은) 노 전 대통령과 자녀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뭉칫돈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은 결국 검찰 손에 달렸다. 검찰 스스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언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건평씨를 노 전 대통령 기일인 23일 이후에 기소할 것으로 보여, 늦어도 이달 말쯤에는 수사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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