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를 떠받친 두 핵심 축이었다. 청와대를 떠난 두 사람은 이제 중앙정치 무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이 전 실장은 귀향해 광주시 서구 구의원이 됐고, 김 전 실장은 국민대 교수로 복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23일)를 앞두고 20일 한국일보와 가진 대담에서 "탈상인 3주기를 맞았으니 이제는 노무현의 가치를 하나의 정파적 논리와 현실 정치에 가두고 해석해선 안 된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문제 등에 대해 현정부와 야권 모두 잘못된 접근을 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야권이 곧바로 '폐기'부터 거론한 것은 잘못됐다는 게 두 사람의 지적이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방향은 계속돼야 한다"면서도 비주류 소수세력의 '조급함'과 '과욕' 등으로 인해 실책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통합진보당이 분명한 쇄신을 통해 '대중적 진보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가 다가왔는데.
▦이병완 전 비서실장= 우리로선 '3년 탈상'이 아니겠느냐. 이젠 추모와 추억 차원에서 벗어나 그 분이 지향했던 철학과 가치를 새롭게 구현하고 미래 국정 운영의 자양분으로 섭취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겠느냐는 뜻에서 '이제 그 분을 놓아드리고 싶다'는 글을 썼다.
▦김병준 전 정책실장=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 역사 인식은 영원히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아쉬운 건 노 전 대통령이 가졌던 가치가 하나의 정파적 논리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그 동안 현실 정치 속에서 놔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정파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김 전 실장=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본 방향과 가치, 현실 인식에 대해 크게 양보하고 싶지 않다. 우박, 비를 피하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로드맵'도 만들었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욕심을 많이 낸 부분도 있고 시기적으로 앞섰던 부분도 있었다. 지역주의 타파, 균형발전 등을 비롯해 결국 당시 크게 외친 게 상생과 평화 등의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역설적으로 그것을 굉장히 투쟁적ㆍ전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슬픈 정치적 현실이 존재했다.
▦이 전 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치'를 내세우면서 집권했다. 비주류 소수 세력이란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과거사 정리 등 역대 정권들이 정치적 이유로 미제로 남겨뒀던 과제를 부단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비주류 소수 세력으로서 국민들께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과욕과 조급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4∙11총선 때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미 FTA 전면 반대와 제주 해군기지 재검토 공약을 내놓아 논란이 있었다.
▦김 전 실장= 제주 해군기지 문제만 해도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굉장히 다차원적인 역사적 문제로 고민했다. 하지만 현재 이를 둘러싼 논박 자체는 노 전 대통령의 고민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하는 방식ㆍ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FTA도 참여정부 때 했던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에도 특히 진보진영에서 대단히 반대했는데 그걸 뚫고 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경제적 현실과 역사적 방향에 대해 큰 고민 없이 폐기 논란이 진행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정부와 참여정부의 FTA접근이 상당히 다른데도 야당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폐기'로 덮어버려 FTA가 많은 위험에 노출돼 버렸다.
▦이 전 실장= 나는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두 사안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갈등 사안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접근법이 핵심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3~5년 정도 꾸준하게 토론하면서 공의를 모아가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반면 야권에서 쉽사리 폐기 주장이 나온 것 자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정파성을 버리고 새롭게 접근하는 민주주의 절차와 철학이 필요한 것 아닌가."
-야권연대를 12월 대선까지 지속해야 하는지를 두고 야권 내부에서 논란이 있는데.
▦이 전 실장= 선거를 앞둔 상황과 여건에 따라 선거연대의 구체적 모습도 달라질것이다. 통합진보당 문제도 현실적으로 터져 나왔다. 여론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각 당의 전략도 있는 만큼 가변적일 것이다. 대선과 총선에서의 유권자 판단 기준도 다르므로 야권연대가 계속돼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DJP연대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도 정권 창출에는 기여했지만 결국 깨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김 전 실장= 기본적으로 선거에 이기기 위한 연대는 대단히 위험한 연대다. 집권을 위한 연대가 되면 집권 후에 정책 파열음이 나오게 돼 상당히 혼란이 따르게 된다. 또 대통령선거 때 유권자들은 사표 방지 심리에 의해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통합진보당이 이번 총선서 얻은 10%가 대선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만일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새누리당 후보가 나왔을 때 진보적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표를 던지겠는가. 집권 후 부담까지 안으면서 무리하게 무조건 연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최근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및 폭력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이 전 실장= 국민참여당 창당에 참여했던 나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이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두 당이 통합 명분은 '진보적 대중정당' '대중적 진보정당'건설이었다. 그렇게 되려면 민주적 절차 등 기본적 정당의 문제에 대한 분명한 치료가 있어야 하고 쇄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정치적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거론되는 방안(부정 경선 관련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은 모든 요구의 첫 조치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 전 실장= 앞으로 대중정당으로 가려면 인물, 리더십부터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소수의 이념에만 얽매여 조직의 민주성을 뒷전으로 돌리고 강령만 앞세우는 리더십으론 안 된다. 다만 국민들도 진보적 가치 추구와 내부 조직 갈등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조직 운영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고 해서 진보적 가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야권의 친노그룹 대선주자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에 대해 평가한다면. 문 고문은 최근 "탈 노무현은 이미 돼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김 전 실장= 노무현을 넘어서는 게 노무현 정신이다.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노무현 정신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탈(脫) 노무현, 비(非)노무현이란 말을 쓸 이유가 없다. 물론 출발이 노무현이므로 지울 순 없을 것이고 발전적으로 가겠다는 뜻인 것 같다. 김 지사도 크게 봐선 노무현의 그림자 속에 있지만 문 고문에 비해 정치 입문 자체에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전 실장= 어차피 대통령을 꿈 꾸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새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과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 두 분의 인생 과정이 다르듯 차별성도 있을 것이고 국민들이 그 과정을 평가할 것이다.
-12월 대선에 대해 전망해 본다면.
▦이 전 실장= 우리 대선사(史)에서 정권심판론은 없었다. 그 말은 결국 새로 전개될 미래에 대한 투자를 보고 투표한다는 것이다. 기업으로 치면 단순히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그 동안의 축적된 과정을 보여줘야 투자자들이 투자할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음 정권은 바로 국내외적 문제에 직면할 텐데 결국은 가치와 비전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과 도덕적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 전 실장= 결국 주요 이슈가 성장이 되든 복지가 되든, 국민들이 자기 주머니에 뭐가 들어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글로벌 상황을 보면 답을 쉽게 내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국민적 양보를 끌어내고 정말 가능한 이야기를 전달해 줄 사람이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 같다. 차기 정권을 누가 맡더라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진행=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정리=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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