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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 사이트가 범죄 통로로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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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 사이트가 범죄 통로로 악용

입력
2012.05.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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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고민하던 P(23)씨는 유명 인터넷 구인ㆍ구직 A사이트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발견했다. "무역업체 사무직 및 보조, 주5일, 월수 200만~250만원." 다니던 직장보다 월급도 많고 휴일을 보장해 준다는 게 맘에 들었다. 업체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P씨는 16일 오후 7시10분께 사무실이 있다는 서울 성북구 지하철 보문역에 도착해, 업체직원이라는 김모(30), 허모(26)씨의 차에 올랐다.

이때부터 악몽과도 같은 53시간의 인질납치 강도 사건이 시작됐다. 김씨 등은 테이프로 P씨의 눈을 가리고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로 끌고 갔다. 허씨는 이곳에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차를 바꿔 타고 이동해 경북 칠곡군 한 무인 모텔에 P씨를 감금한 뒤 감시했다. 인출책을 맡은 김씨는 17일 0시5분부터 P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18일 오후 3시까지 5,000만원을 입금하라"고 수 차례 협박했고, 다음날 P씨 어머니가 1,000만원을 입금하자 서울 일대를 오토바이로 돌며 돈을 인출했다. CCTV에 담긴 인상착의를 토대로 추적에 나선 경찰에 18일 오후 붙잡힌 이들은 "카드 빚 등 채무 5,300만원을 갚기 위해 납치강도 행각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 구인광고를 A사이트에 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각한 구직난을 틈타 유명 인터넷 구인ㆍ구직사이트를 각종 범죄의 통로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무 내용이나 근로 조건을 속여 구직자들을 성매매나 불법 다단계에 끌어들이는 등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지만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아무런 예방 내지 감시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채용 사이트의 구인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온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3월 경찰에 검거된 도모(42)씨는 이미 두 차례나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구인 광고를 다시 올릴 수 있었다. 도씨가 구인광고를 올린 B사이트는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고용 서비스 우수기관' 인증까지 받은 업체다. 인터넷 구인사이트들은 단순히 팩스로 받는 사업자등록증과 함께 업체의 연락처만 확인하고 채용 정보를 올리는 판이다. 100여 개에 달하는 구인ㆍ구직 사이트 중 하루 신규 가입자만 1만여 명이 넘는 유명 사이트들조차도 채용 업체의 신뢰성을 따지는 절차가 사실상 전무하다. 한 온라인 채용 업체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증을 낸 뒤 작정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털어놨다. 이런 사정이니 멀쩡한 대학생들도 사기대상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지난 3월 대학생 18명이 휴대전화 판매회사로 위장한 다단계 업체의 인터넷 구인 공고에 속아 8,000여 만원을 뜯겼다.

정부도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다.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를 통한 범죄가 잇따르자 구인사이트 운영업체에 모니터링 강화를 지시하고 지난달부터 지방자치단체에 허위 광고 등에 대한 특별단속을 지시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많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하루 수 만 건씩 올라오는 구인ㆍ구직 광고를 모두 모니터링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이트 운영자들은 사업자 등록증을 팩스로 받아서 확인하고, 휴대폰 인증을 하는 외에 다양한 신뢰성을 보장할 장벽을 더 쌓아야 한다"며 "구직자도 면접 장소나 시간 대 등을 따져보고 이상한 점이 있는 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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