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는 유 씨의 몸종인 안잠자기로 늘 안채의 뒷방에서 손발처럼 모시고 같이 살았습니다. 준이 오라비와 신이 오라비의 나이 차이가 세 살 터울입니다. 큰오라비와 작은오라비는 진작부터 집안에 독선생을 들여 공부를 시켰지요. 저는 유 씨가 어머니인 줄로만 알고 자라다가 여섯 살쯤에 가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큰오라비는 동이에게 언제나 반말을 했구요 어머니가 야단을 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덩달아 욕설도 늘어놓았지요. 뒤에 신이 오라버니에게 들었는데 자신은 진작부터 어머니가 우리 친어미가 아님을 알았다는 게지요.
오라버니와 저는 교전비 동이의 소생이었던 것이지요. 언제 아버지가 그이와 그렇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교전비가 상전의 아이를 낳는 것은 양반가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독선생을 들여서 형제가 나란히 공부를 할 적에 작은오라버니가 월등하게 총명하여 배우는 책마다 먼저 떼고는 아버님이 칭찬하고 책거리로 떡을 해주곤 했답니다. 아버지가 집안을 엄하게 다스리셔서 저희 남매는 열 살 넘어 지각이 든 뒤에도 겉으로는 집안 식구와 하인들에게서 차별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신이 오라버니를 본받아 이제는 나이 들어 젖어멈이 된 동이 아줌마에게 존댓말을 썼습니다. 큰어머니는 준이 오라버니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준이 오라버니는 지방 향시에서 떨어진 뒤에 약방에서 아버지 일을 돕다가 청주 향청에 일을 얻어 나가버렸지요. 신이 오라버니는 문과를 해보겠다고 과거를 준비하던 무렵이었지요. 그런데 저희 남매는 가본 적도 없는 외가에서 소송이 들어왔습니다. 보은 고을의 별감이 아버지에게 찾아와 문건을 전달하고 갔다고 합니다. 외가는 소송 건을 청주에 지목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직접 출두하지는 않고 대리인을 세울 생각이었습니다.
소송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저희 외가에서는 사돈 간이던 생원 부부도 세상을 떠나고 유 씨의 손아래 남동생이 가장이 되었는데 가산이 많이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는 누이 유 씨가 죽은 뒤 그녀의 교전비 동이와 그 자식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려준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저희 아버지 이지언은 술에 취하여 발설한 적이 있더니, 그것이 큰오라버니의 짓이라는 거예요. 언젠가 준이 오라버니가 아직 약방에서 아버지를 돕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사랑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서 신이 오라버니가 우연히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아무리 양반이면 뭘 합니까? 서류(庶類)에 지나지 않는데요. 제가 아버지 때문에 향시에도 미끄러졌지요.
이놈아, 그게 어찌 내 탓이더냐? 네가 공부를 게을리한 때문이지.
아버지가 서자이신데 제가 어찌 연좌를 피할 도리가 있겠어요? 게다가 신이나 덕이는 천첩(賤妾)의 자식이니 저와는 주종의 관계이지 동기간이 아닙니다. 제가 모를 줄 아십니까? 동이란 년도 원래 우리 어머니 재산입니다.
아버지가 준이 오라버니를 때리기 시작했으며 어찌나 분노하셨는지 그가 터진 머리를 감싸쥐고 맨 버선발로 마당으로 쫓겨 나오자, 당신도 한 손에는 담뱃대를 쳐들고 휘두르며 맨발로 마당에 뛰쳐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어서 아버지는 준이 오라버니가 제 외가를 드나들며 사촌 아우를 꼬드겼을 거라고 짐작했지요. 지난 갑오년에 모두 혁파되어 이제는 나라 법으로도 노비는 없는 일이 되었지만, 풍속이란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이 아니라서 지금도 도처에서 노비들이 종살이를 합니다. 그러니 수십 년 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상전이 혼인할 때에 따라간 교전비는 주인이 살아 있는 동안은 시집의 소유였지만, 주인이 죽고 나면 법으로는 주인의 친정 소유로 돌아가게 된답니다. 그러할 제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그 소생인 저희 남매도 노비로서 외가의 재산으로 되돌려져야 하는 것이랍니다. 대리인으로 지금의 제 남편이 청주 질청에 출두하게 되었는데, 제 남편은 이 고을 훈장이시던 송 초시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제 오라비들과 글공부를 함께하였고, 준이 오라버니가 집을 떠난 뒤에는 줄곧 아버지의 약방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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