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270명의 사망자를 낸 팬암 여객기 폭파사건의 주범 압델 바셋 알리 모흐멧 알메그라히(사진)가 20일 6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메그라히의 가족은 이날 "메그라히가 오후 1시(현지시간) 리비아 트리폴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전립선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해 온 메그라히는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88년 12월21일 오후7시.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한 뉴욕행 팬암 103편 여객기가 스코틀랜드 남부 로커비 마을 상공에서 사라졌다. 이륙한지 1시간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팬암기는 공중에서 폭발, 산산조각이 났다. 기체 잔해가 1,200㎢이르는 지역에서 발견될 정도로 폭발은 엄청났다. 승무원을 포함한 승객 259명 전부와 현지 주민 11명까지 총 27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미국인만 189명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합동 수사팀은 3년간의 정밀 조사 끝에 91년 리비아인 두 명을 폭탄 테러범으로 점찍었다. 몰타항공 대표인 알아민 칼리파 파미하와 항공사 직원으로 위장한 리비아 정보요원 메그라히였다. 미국은 86년 독일 베를린의 미군 전용 디스코텍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사건 배후로 리비아를 지목하고 공습을 단행했는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팬암기 폭파를 지시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카다피는 미국의 신병 인도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동원, 카다피의 해외자산 동결, 민간항공기 운항 금지 등의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리비아 정부는 결국 99년 두 사람의 신병을 미국 측에 넘겼다.
스코틀랜드 법원은 2001년 네덜란드 캠프자이스트 미군기지에서 열린 재판에서 두 명의 용의자 중 메그라히에게만 유죄를 선고했다. 메그라히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했다. 하지만 2009년 8월 전립선암 3기로 수명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진단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됐다. 메그라히는 리비아로 돌아와 트리폴리에서 지금까지 지내왔다.
메그라히의 죽음과 함께 로커비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도 막을 내릴 전망이다. 메그라히는 생전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로커비 사건 재판은 한편의 광대극"이라며 "내가 재판을 받았던 네덜란드 미군기지는 수많은 거짓말쟁이들의 집합소였다"고 비난했다.
실제 팬암기 폭파 사건은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 있다. 메그라히 기소에 결정적 역할을 한 증언은 이미 거짓으로 밝혀졌고 미ㆍ영 수사팀이 3년 동안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의혹을 샀다. 카다피마저 지난해 숨져 사건의 배후를 단죄할 기회도 사라졌다. 팬암기 사건으로 딸을 잃은 짐 스와이어(60)는 BBC방송에 "메그라히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할 충분한 정보가 있다"며 "이제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메그라히의 유죄 판결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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