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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기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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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기의 혁신

입력
2012.05.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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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라는 말은 사방에서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혁신적 변화라 할 만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혁신에는 파괴가 따르게 된다. 새로운 구상과 새로운 계획이 현실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습과 기존의 관계는 모두 사라져야만 한다. 그래서 이 파괴 당하는 쪽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은 혁신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게 또 심지어 뻔히 보이게 그것을 가로막게 돼있다. 따라서 혁신이 실현되려면 혁신에 따르는 파괴의 비용과 고통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의 분담을 누군가가 제대로 해야 한다. 여기에서 지도자 혹은 지도 집단의 결정적 역할이 있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혁신을 꺼리는 수많은 이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대결할 배짱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설득력과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지도자가 얼마나 스스로를 철저하게 유능하고 헌신할 줄 아는 존재로 끊임없이 혁신하도록 채찍질하는가가 관건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매 순간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바꿀 줄 아는 자다. 새로운 혁신의 구상도 또 주저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꾸짖어 변화에 나서도록 할 정신적 감화력도 모두 거기에서 나온다. 이것이 은나라 탕왕이 '백성을 새롭게 한다(新民)'를 외치기 이전에 '스스로를 매일매일 새롭게 하자(日新又日新)'고 청동 냄비에 새겨놓았던 뜻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어느 선배와 나눈 짧은 대화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이런저런 폐해와 악습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스스로의 임무로 자임하는 혁신 세력이 통합진보당이다. 그런데 그 중 일부 집단은 실로 보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한국 정치 70년사에 등장했던 각종 구태와 악습을 거의 백화점처럼 그것도 가장 진한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래도 한국 진보 세력은 일정한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니까 이러한 구태와 악습을 도려내고 다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는 세력으로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말했다. 과연 그럴까. 이번에 구태 집단임이 드러난 이들만 몰아내면 과연 그런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통합진보당은 한국 사회 전체를 그것도 가장 혁신적인 방향으로 이끌겠다고 그 향도가 되겠다고 나선 지도집단이다. 구태와 악습을 덜어내면 저절로 그런 지도집단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집단이 되기 위해 가장 절실한 '자기의 혁신'을 위한 계획이 과연 어느 정도나 있는가.

그럴 리 없겠으나 노파심에서 나온 걱정을 말하자면, 혹여 구태와 악행을 저지른 일부 인사들이 다른 세력과 싸우는 과정을 그런 자기 혁신의 과정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누구나 말하고 있듯이 한국의 진보 세력은 청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떠안고 있는 숱한 과거의 유산들에 짓눌려 혁신은커녕 한국에서 가장 수구적인 집단의 하나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럴 때 자기가 변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혁신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쇼로 남들과 자기를 속이기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무언가 내부에서 '문제 집단'을 찾아내 모든 문제를 그 집단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뒤집어 씌운 뒤 그 집단을 격렬히 배척하고 마침내 갈라서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몇 십 년 간 진보 세력의 역량과 에너지를 좀먹어온 '정파 싸움'의 메커니즘으로, 이는 앞에 말한 바 몇 십 년 간 혁신 없이 정체된 한국 진보의 모습과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통합진보당이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기길 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처음에 꿈꾸었던 것과 같이 순탄하게 야권연대와 대선 승리의 장밋빛 계획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의 혁신'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스럽고 치열한 자기 성찰과 구조조정의 과정이다. 야권연대이든 대통령선거이든 지금 문제가 아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통합진보당이나 여타 한국의 진보 세력 전체가 지도집단은커녕 누구 말대로 국민적 우환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을 테니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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