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지 다섯 달이 다 되어 간다. 원고지 분량이 넉 장 미만, 글자 수로 치자면 680자 내외이니 까짓것 뭐 어렵겠나 싶었는데 웬걸, 생각보다 만만찮구나 알아가는 요즘이다. 길면 아주 길든가 짧으면 아주 짧든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 속에 팽팽한 긴장감으로 짜임새 있게 써야 하는 에세이의 어려움.
다행히 그 한계로부터 일찌감치 미끄러졌더니 글에 대한 부끄러움은 나 몰라라, 대신 뻔뻔함만 남아 연일 민폐를 끼치게 된 이들이 있다. 마감을 훌쩍 넘겨서도 도착할 줄 모르는 내 글을 기다리느라 골병 들게 생긴 기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 옛날 잡지 기자 시절,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물으면 집주소를 불러주던 시절, 원고를 받기 위해 필자의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내가 있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는데 어둑어둑 밤이 되자 대문 너머 그 집 안 곳곳에 켜지던 불빛. 편집장한테 혼날 걱정보다 예서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은 헛헛함에 발길을 돌리며 눈물깨나 흘렸던 나, 기필코 복수할 거다 다짐했었다만 아무래도 그 대상을 잘못 짚은 듯하다.
성실이 죄라고 힘없는 기자들의 문자사서함을 원고로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서든 빵빵 터지는 무선인터넷의 시대라지만 다급히 전화로 원고를 불러줘야 했던 어느 날, 조사 하나를 두고 잠시만요, 침묵하는 나를 기다리며 기자는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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