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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유영국 10주기전 여는 건축가 유건씨/ "추상은 보는 대로 이해하라던 아버지 여전히 이건 뭘까 궁금한 작품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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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유영국 10주기전 여는 건축가 유건씨/ "추상은 보는 대로 이해하라던 아버지 여전히 이건 뭘까 궁금한 작품 있죠"

입력
2012.05.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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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홀로 고민하는 외로운 직업이잖아요. 그 때문에 건축을 택했는데, 결국 설계도 혼자 하는 일이더군요." 건축가가 되고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깊이 깨달았다는 그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추상미술 씨앗을 뿌린 유영국(1916~2002) 화백의 차남이자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인 유건(59)씨. 울릉도에 자리한 독도박물관을 설계한 그는 요즘 유영국 화백의 아들로 더 유명해졌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0주기'전이 열리는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그는 종종 눈을 붉혔다. 화업 60년 동안 800여 점을 남긴 유 화백의 시대별 대표작 60여점이 전시된다. 기막힌 우연인지 이 전시장은 유건씨가 7년 전 설계한 곳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아버지의 그림을 보다가 그가 물었다. "이건 뭘 그리신 겁니까?" 좀처럼 말이 없던 아버지가 짧게 답했다. "추상은 설명이 필요 없어. 네가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강렬한 원색과 보색 대비로 캔버스를 우주 삼아 그려낸 것은 우리 산과 나무, 태양 등의 자연이다.

경북 울진의 선주(船主) 아들이던 유 화백은 마도로스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고교 중퇴생인 그를 받아준 곳은 전위예술을 장려한 일본동경문화학원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가 반장이었는데, 학생들을 감시하라는 선생님의 요구를 견딜 수 없어 자퇴하셨대요. 그리고 유학 중에 추상화를 알게 되신 거죠."

다양한 매체를 실험한 절대주의 추상부터 구획선이 사라진 추상 표현주의로 절정기를 맞았던 유 화백은 이후 서정시처럼 자연에 대한 관조미가 느껴지는 말기에 이르기까지 10년을 주기로 화풍을 바꾸며 그만의 추상화를 완성했다. 오전 8시 화실로 출근해 오후 7시 퇴근하며 평생을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그는 50대엔 당뇨로, 60대엔 심근경색으로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지만 퇴원 후에도 습관을 놓지 못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거의 일년을 입원했다 화실로 돌아오시면 반년은 화구를 들지 못하세요. 온종일 앉아 캔버스를 바라보셨죠. 그때마다 얼마나 절치부심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전쟁 직후 고향에서 물려받은 양조장을 운영했던 유 화백은 곧 운영을 위탁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가끔 양조장에 생활비를 받으러 갈 때면 차남을 동행했다. "버스 안에서도 말씀 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으시는 게 전부였어요. 아마 소재 발굴의 과정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떠나기 10년 전부터 화업을 뒷바라지 한 유씨는 이제야 아버지 작품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산맥을 그리신 것 같고요, 노란 둥근 형상은 태양을, 푸르스름한 색은 달을 표현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아직도 무슨 그림일까, 하는 작품이 많아요. 아버지 말씀대로 제게 보이는 대로 보는 게 정답이겠죠." 전시는 6월 17일까지. (02)519-08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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