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은 특별하다. 상업영화도, 독립영화도 아닌 그의 영화는 충무로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의 작업 방식도 남다르다. 1억원 가량의 제작비로 2주 정도의 촬영 기간을 거쳐 1년에 두 편 꼴로 신작을 내놓는다.
저예산 영화라지만 배우들까지 무명은 아니다. 이름난 배우들이 무보수 혹은 저임금으로 그의 영화에 힘을 실어준다. "출연 섭외 전화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다"며 '짝사랑' 고백을 하는 배우도 적지 않다. 31일 개봉하는 신작 '다른 나라에서'는 프랑스의 명배우 이사벨 위페르와 함께했다. 전북 부안 모항을 찾은 프랑스 여인의 세가지 이야기를 다룬 '다른 나라에서'는 16일(현지시간) 개막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다. 그간 그가 만든 13편의 장편 중 8편이 칸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홍 감독을 19일 오후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왜'라는 질문에 '왜'의 무의미함을 반박하는 식의 답변으로 응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8년 만에 가게 된 소감은.
"일단 잡일이 다른 때보다 많아졌다. 외국배우가 나오니 해외에서 요구하는 것도 많다. 그곳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선 어떻게 생각할지 보고 듣고 하는 과정 자체가 기대된다."
-전북 부안을 배경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는다. 촬영을 하고 싶을 때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선다. 촬영 몇 달 전 모항을 일부러 찾았다. 작은 갯벌과 해변도 있고 주변에 절도 있어 좋았다.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여기서 해야겠다 생각했다."
-저예산으로 영화 찍느라 어렵지 않나.
"어려운 점이 있긴 하나 도와주시는 분이 있고 배우나 스태프가 적은 돈만 받고 일을 한다. 힘든 점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나쁘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의외로 좋은 면이 있다. 마음대로 관찰할 수 있고 자유로움도 있다. 거기서 얻는 좋은 점이 많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도 내용이 좀 모호하다.
"보통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현실 인식이 있고,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그러나 내 영화는 시작 자체가 현실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장소든 일상이든 소재를 먼저 선택하고 소재에서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뭔가를 발견하려고 한다. 조각가에 비유하면 여행하다 가져온 큰 돌멩이를 하나씩 깎고 발견한 결에 따라 반응하고 또 다른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 영화엔 명확한 주제의식이 잘 안 보인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게 되는 이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르게 보이는 영화, 나는 그게 좋다."
-8년 만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라 감회가 좀 다르지 않나.
"정신병자가 아닌 한 경쟁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니 나도 가끔 (경쟁 부문 진출과 수상을) 의식은 한다. 그러나 난 관객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가 궁금하다. 난 인터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위해 내 영화를 설명하는 게 싫고, 내 영화는 이렇다 정의하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 마시며 영화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다. 한마디로 정리되는 것은 싫다."
-1년에 두 편 꼴로 만드니 '방학영화'(그는 건국대 영화전공 교수다)라는 말도 있다.
"나는 급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워낙 적은 금액으로 하니 자유로움이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드는 것이다.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학교 생활로 생활비도 벌고 영화 제작비도 번다. 학교는 사무실 역할도 한다. 최소한의 안정이 필요한데 학교에서 얻는 것이 많다. 내 영화는 돈을 버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가 무엇이길래, 그리 어렵게라도 만들려 하나.
"내가 정리를 잘 못하기도 하지만 정리를 해서도 안 된다. 정리를 하면 말에 매이고 뭔가를 잃는다. 여행을 가고 어떤 이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영화를 그냥 만들고 싶을 뿐이다."
-프랑스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이 출연하는 영화를 이미 찍었다고 들었다.
"지난 3월 내한한 버킨에게서 전화가 와 얼굴을 볼 겸해서 만났는데 카메오식으로 한 장면을 바로 찍었다. 영화 촬영은 다 마쳤고 칸 다녀와 후반작업을 해 7월쯤 완성할 계획이다. 이선균 정은채가 주인공이고 김자옥 김의석 유준상 예지원 기주봉 등도 나온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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